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Sep 10. 2021

외로운 기분이다

부질없는 생일따위!


물만두 오천원에 열 네알이라니!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무 밑으로 들어가서 그늘 아래 앉아보라. 그림자가 사라질 것이다. 달아나지 말라. 그림자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없다. 에고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강력하고,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벗어날 수 없다.

오쇼 라즈니쉬, <더 북> 본문 중


*


나는 징크스가 있다. 행복하고 싶은 날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날이 되는 징크스. 언제쯤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홉 살 때였나, 열 살 때였나.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다. 노란색에 칸이 큰 일기를 쓰고 있었고 초롱이란 이름을 붙여줬으니까. 그때는 네 가족이 다 같이 나무로 만든 집에 살던 때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에 엄마와 아빠는 대판 싸웠다. 방 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서 깜깜한 창밖을 보면서 썼던 일기는 아직까지 생일날을 사로잡는다. 그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행복하고 싶은 날은 늘 끔찍하다.​



아마 그 전후로 즐거워야 할 날에 비슷한 싸움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릴 때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당연한 수순처럼 호되게 혼이 났다. 매질도 있었고 언어폭력도 있었다. 대부분은 흐릿해졌지만 그 생일날의 기억만큼은 너무나 생생하다. 일부러 일기장에 눈물자국이 남도록 얼굴을 부비면서 글을 썼던 어린 내 모습. 주방 식탁에서 겉치레처럼 놓여 식어가던 케이크. 내가 기대하는 행복이 정 반대로 이루어지는 저주 같은 생일. 아직까지도 나는 혼자서 이 날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외로워한다. 축하받는 것도 이상하고 익숙지 않다. 나는 생일이 아닌 날 더 행복하다. 생일 같은 게 없어져 버리거나 사 년에 한 번 정도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릴 때가 아니더라도 생일 징크스는 나날이 굳세어젔다. 첫 남자 친구와 맞았던 생일에는 대판 싸웠고, 고등학교 시절 생일을 챙겨줬던 어른들은 불건전했다. 매번 찾아오는 생일마다 좋았던 적이 없었다. 어려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걸까. 하지만 오늘도 나는 우울하기 짝이 없다.

나이가 들고 엄마 아빠의 이혼 후로 각개전투를 시작하자 되려 사이가 좋아졌다. 장난도 치고 형식적으로 나마 안부를 묻고 낯간지런 애정표현을 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유난스러워진 것은 작년부터다. 작년 생일이 너무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바람에. 코로나로 외부 출입은 뚝 끊기고 그나마 기운을 받던 손님들도 지인도 만날 수 없었다. 외딴섬 정도가 아니라 감옥의 독방에 갇힌 느낌이었다. 몸을 덮는 절망감에 평생 연락 한번 안 하던 이들에게 문자 해서 축하를 구걸했다. 바짓단을 잡고 매달리는 나에게 햇살같은 친구들의 생일 축하는 꽤나 맛이 달았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외로웠지만 그래도 생각이 좀 바뀌었다. 오늘 축하받은 놈들의 생일은 나도 축하해주리라고.

이번 생일은 나쁘지 않았다. 아빠도 엄마도 미리 찾아와 내가 부리는 앙탈을 받아주었고 동생도 슬쩍 맛있는 걸 내민다. 그럼 행복해야 하는데 별로 행복하지가 않다. 세상이 내가 태어난 걸 얼마나 축하해줘야 만족하려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생일이 싫다. 이 피곤하고 진 빠지는 하루가 후다닥 지나서 내일 아침이 밝았으면 좋겠다. 지나가다가 내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선물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좋아지지 않을 기분이다. 나는 성격 나쁜 욕심쟁이다. 생일만큼이나 자기 자신이 중요한 날에, 일 년 삼백 육십 오일 나 자신만 중요하기를 바란다. 이 날이 얼른 지나가야 한다. 세상이 나에게 무언가 해줘야 할 의무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날로. 내가 태어나던 말던 별 의미가 없는 날로.

나는 오늘도 근무 중이다. 잠깐 나온 점심시간에 주변의 모든 가게가 브레이크 타임으로 문을 닫아 먹고 싶었던 쌀국수를 못 먹게 되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남자 친구는 생일이고 뭐고 연락 한 통 없다. 후줄근한 중국집에 앉아 오천 원짜리 물만두에 테라 맥주를 시켰다. 칭따오가 먹고싶엇지만 맥주 한병에 육천원은 너무 아까워서 테라로 바꿨다. 나온 물만두를 보니 정확히 열네 알이다. 접시에 만두보다 빈 공간이 많다. 외로운 기분이다.

역시, 생일은 끔찍하다. 모든 것에 기대하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그늘로 들어가도 생일 하루만큼은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쇼 라즈니쉬의 생일엔 축하받을 만큼 축하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적인 책을 쓰지만 신성한 느낌은 들지 않는 할아범탱이. 나무 밑으로 들어가도 내 주변은 잎사귀보다 조금 더 진한 그늘이 질 것이다. 에고는 고사하고 생일 징크스에서 만이라도 도망갈 수 있으면 좋겠다. 씁쓸한 날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찾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