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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Sep 29. 2021

재밌어서 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단상 3




조지 오웰, 무시무시한 에세이스트.



옆집에 사는 피부색 짙은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등이 다 벗겨진 당나귀를 보고서 안쓰러워할 수 있지만, 장작더미 밑에 웅크린 노파가 눈에 띄기라도 하는 건 우발적인 사고에 가까운 것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마라케시’ 중


​*


벽면이 통유리창으로 되어있는 우리 가게는 밖에서도 안이 보인다. 잡상인과 노숙인들도 지나가다가 우리 가게를 본다. 나는 지금까지 일하면서 껌을 파는 아줌마와 파인애플 파는 아저씨를 쫓아냈다. ‘우리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게’ 차림새도 후줄근했고 손님들이 살 것 같지도 않은 물건을 들이밀면서 영업에 불편을 주었기 때문이다. 껌팔이 아줌마의 경우는 왜 저런 사람을 가게에 들어오게 했냐고 대표님한테 혼이 났다. ‘저런 사람’. 행색이 초라하긴 했지만 커피 한 잔 술 한 잔 즐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보다 연장자였고,  유리문 앞에서 쫓아내기에는 너무 박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로써는 더 편한 일이었겠지만 조금 추레하게 가게에 들어와도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자기의 시간을 보내다 나갈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나는 꾸지람을 들었다. 나한테는 손님의 외관을 보고 들어올 사람과 들어오지 못할 사람을 골라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기차역 근처라 노숙인이 많아서, 구질구질하고 필사적인 잡상인들이 많아서. 그래서 파인애플을 파는 아저씨를 쫓아냈다. 다소 무례하게, 강경하게 가게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그 사람도 나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경험이었다. 아저씨가 손에 든 파인애플과 과도를 놓고 멀쑥한 옷으로 다시 온다면 우리 가게에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역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무어라도 팔아보겠다고 들어온 인상 좋은 아저씨를 쫓아냈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린 내가 아저씨한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니까 나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때 뒤쪽 창가에는 손님의 강아지가 앉아있었다. 손님의 개들은 들어올 수 있지만 잡상인과 노숙자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게 좋은 것이 우리 가게다. 햇살이 내리쬐는 통창으로 되어있지만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들이 창 너머를 지나가면 눈살을 찌푸린다.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에서 눈을 돌린다. 혹시라도 저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까 주시하면서. 그럼 쫓아내야지, 경찰을 불러야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마라케시’ 중 모로코에서 노파에게 적선을 하기 전에도 조지 오웰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말을 한다. 백인들이 휴가를 즐기러 떠나는 열대의 도시와 유명한 관광지 아래 덮여있는 가난에 대해. 필리핀과 캄보디아의 석양이 지는 바다와 웅장한 유적지는 좋지만 택시 유리를 쳐대며 구걸을 하는 아이들은 외면하는 사람들에 대해. 집 옆에도, 지하철 역에도 돌아다니는 가난의 흔적은 언제부터인가 동물의 권리보다 덜 신경 쓰이는 것이 되었다. 조지 오웰은 자기 몸집만 한 장작을 나르는 노파보다 평생 혹사당하는 당나귀의 처사에 대한 것을 걱정했고 나는 가슴을 훌렁 까고 가게 앞을 휘청거리는 여성 노숙인보다 산책 중에 주인을 놓친 보더콜리에게 더 마음을 썼다. 인간은 때때로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보다 사랑받지 못한다. 한 공간을 사용하는 것조차 주변인들이게 모욕감을 주는 존재가 된다. 들개나 들쥐와 같은 취급이다.


아름다운 것들이 아름다운 채로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모른 척 떠밀어버렸을까. 백인 남성에게 타인종보다 우월하고 세계경제를 주름잡을 만큼의 권력을 몰아주었다면 긴 긴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유색인들을 동물인 듯 동물보다 못한 듯 멸시해 왔을까. 내 업장이 2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세련되고 사진이 잘 찍히는 가게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동네 노숙인과 상인들을 쫓아내야 할까. 유리 한 장 너머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더 해야 할까. 생각을 하고 또 하다 보면 조지 오웰 같은 첨예하고 날카로운 사회상을 적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금처럼 파인애플 상인을 가게에서 내보내기 위해 잡았던 남성의 팔뚝이 두껍고 무서웠다던 시답잖은 이야기나 쓰게 될까.


 


매번 피곤에 절어 퇴근할 만큼 지친 주제에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낭독 모임을 신청해 놔서 산처럼 쌓인 도서관 책을 두고 <나는 왜 쓰는가> 재독을 하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싱가포르 자가격리 호텔에서 아이패드에 담긴 이북으로 읽었다. 조지 오웰, 무시무시한 에세이스트. 뜬구름처럼 간질거리고 불편한 문제들을 갈고리로 낚아채 생선 내장 뒤집듯 길바닥에 펼쳐놓는 사람. 일전에도 이 책에서 뽑아온 문장으로 꽤 많은 글을 썼다. 절반은 글을 너무 잘 쓰는 조지 오웰에 대한 열등감과 투정이었고 반절은 그의 문장을 슬쩍 가져와 내 멋대로 주절거린 짧은 글들이었다. ‘교수형’에서는 할머니의 인생을 인터뷰하며 구술 생애사를 풀고 있는 동생의 이야기를(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다), ‘행락지’에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엄마 뱃속의 안락함을,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문장에서는 내 몸에 있는 털을 제거하고 기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속에는 어린아이들을 보는 시각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연관 지어 몇 글자 적었고 ‘정말, 정말 좋았지’에서는 단 한 문장으로 7살부터 7년 동안 아역배우를 했던 일을 가지고 짜증을 부리는 글을 썼다. 낭독 모임 신청을 하자마자 나는 게을러졌다. 일전에 써둔 것도 많겠다 은근슬쩍 짜깁기 해서 초고를 때워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나와 너무 달라졌다. 그 글은 그때의 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들이었다.



지금 읽어도 좋은 것은 여전히 좋다. 하지만 전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몇 배는 더 많다. 남에 나라 얘기라고 겉핥기만 했던 단원이 사실 그 무엇보다 내가 요즘 들어 관심이 있는 사회 이슈였다던가, 잘 몰라서 대충 넘겼던 세계사적 사건들이 이제야 또렷한 순서와 함께 드러나 보인다던가. 재미있는 일이다. 두 번은 안 읽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왜 쓰는가>가 지금은 내용을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의미 있는 책이 되었다. 남은 부분도 완독하고 나면 내가 느끼는 것도 또 바뀌어 있을 것이다.​


‘마라케시’는 예전에 흑인들의 반란을 목을 닦고 기다리는 백인의 입장이라고 지나쳤던 단락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빈민층을 창문에 묻은 얼룩처럼 닦아내는 싱가포르에 살다 왔고 한국에서 노숙인 인구가 높은 지역에 새 직장을 얻었다. 책을 다 읽을 때면 또 다른 잡상인을 쫓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다른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은 사람과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와 인류를 이야기한다.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국가에 대해, 어거지로 쓰여지는 역사에 대해 짜증내고 한심스러워한다. 개탄할 만큼 격한 어조도 아니건만 몽매한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혼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동남아의 거지 아이들을 외면했던 것처럼 나도 내 나라와 세계에서 잡초처럼 뿌리박은 폐단들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본 적 없을 리 없다. 불편해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저 뒤를 돌자마자 잊어버렸고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눈을 질끈 감았을 뿐이다. 겨우 몇 개월 사이에 이전보다는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 글을 비겁할 만큼 잘 쓰는군.’ 정도로 턱을 쓰다듬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주제를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헤칠 수 있지?’에서 감탄만 하고 책을 덮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한번 툭 건드려보는 것이다. 그저 몽매한 민중이라 조지 오웰과 다르게 그 어떤 생산적인 결론도 낼 수 없는 조잡한 결말로 끝이 나지만, 그래도 글을 읽으며 내가 찜찜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별 것도 아니지만 글로 써보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것에 기대를 한다. 아직 눈이 보이고 손이 움직여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한다. 온갖 것들을 중구난방으로 늘어놓은 꼴이라도 나는 이따금 써지는 내 글이 좋다. 조지 오웰의 책 제목처럼 누가 나에게 글을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재밌어서 쓴다고 할 것 같다. 그냥 재밌어서. 아직은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가끔씩 글을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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