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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Sep 30. 2021

근로계약서를 썼다네

나는 여전히 영화 <기생충>이 싫다



이 한 장을 위해 삼개월을 일했지


"그렇게 해야만 되는 거요." 그가 말했다. "이런 데를 너무 좋게 만들어놓으면 온 나라의 쓰레기들이 다 몰려들게 돼요. 그런 쓰레기들을 떼어놓으려면 음식이 나빠야만 되고요. 여기 이 부랑자들은 너무 게을러서 일을 하려고 안 하지. 다들 그래서 저 꼴이 된 거라니까. 그런 사람들 격려해줄 것 없어요. 다 쓰레기니까."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스파이크' 중

​​


*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래도 한 몸 꾸릴 만큼은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대보험을 떼고 나니 이백만 원이 간신히 넘는다. 내가 직장 근처에 얻으려고 알아놓은 집은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가 칠십이었다. 관리비 삼만오천 원 따로, 가스 수도 전기비 제외. 그나마 마련한 내 보증금은 천이 채 되지 않으니 월세를 오만 원 올려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땅값이 하늘을 뚫는 지역에서 비교적 깔끔하고 가전제품이 구비되어 있는 분리형 원룸 오피스텔에 들어가려면 한 달에 얼추 백만 원은 주거비용으로 내야 한다. 사대보험이 빠져나가고 식대도 보장되지 않은 내 월급은 '깔끔한' '오피스텔'은 넘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넘겼던 런던의 구빈원이 눈앞으로 찾아온다. 나이 스물여덟, 거의 주 육일 아홉 시간 근무, 월급은 이백, 월세는 백. 장기를 털어도 이것보단 많이 남을 것이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부랑자는 너무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 걸까. 이렇게 계속 일하는 나는 나중에 부랑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젊고 몸도 건강한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세금을 떼기 전의 월급은 그래도 월세 칠십을 내고 돈도 좀 모으고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도 즐길 수 있는 정도였다. 서울에서 돈 이백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한다. 싱가포르에 가느라 엄마에게 진 빚도 있다. 자랑스럽게 사대보험을 내는 직장인인 나는 당장 다음 달부터 카페 앞에서 망설여야 한다. 마음에 드는 예쁜 옷과 신발 앞에서, 머릿속을 맴도는 스테이크 집 문 앞에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매 달을 다음 달만 보며 버텼다. 보증금만 모으면, 다음 달 월급만 받으면, 선배가 새로 오픈한 바도 가고 스테이크도 한번 먹으러 가야지. 그때 작년에 맞춘 맞춤정장도 입어보고 새로 산 로퍼도 신어봐야지. 그렇게 뒤로 뒤로 밀린 지 세 달, 드디어 정직원이 되었는데 월급은 오히려 바짝 깎였다. 차라리 미리 놀다 왔어야 할 지경이다. 한 달 삼십일 중 육일의 휴무를 받고 실수령 금액은 이백만 원. 바텐더를 하면 밤에 퇴근해야 하니 자취방은 도보거리 아니면 심야버스.(두 지역 모두 최고의 집값을 자랑한다) 내가 게을렀나? 그래서 지금 꼬박꼬박 월에 백만 원을 내지 못해 길거리에 나앉거나 서울 구석에서 사글세를 살아야 하나? 의문이 든다. 이 세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몸뚱이에서 뭘 계속 가져가는 건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았다. 모은 돈으로 퇴사 후에 해외여행을 실컷 다녔다. 나 좋자고 노는 것에 부모님한테 손 벌린 적 없이 여러 나라를 갔다 왔고 모은 돈은 없어도 후회 없이 놀았다. 사실 살다 보면 이 나이쯤엔 이백만 원보다는 더 받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없지 않았다. 아니구나. 당연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구나.

돈이 내 직업을 싫어지게 만든다. 3.3프로의 세금은 괜찮지만 십 프로의 세금은 나를 죽고 싶게 만든다. 내가 똥을 싸는 쓰레기인만 같다. 손님 앞에서 웃음도 겉치레도 나오지 않는다.

어릴 땐 어려서 월급 백오십을 받고 칠십 월세를 내도 괜찮았다. 남은 시간에 얼마든지 벌어 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나이엔 그렇지 않다. 늘 내가 하는 일이 좋고 행복하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꽉 찬 것은 고호봉 공무원인 동갑내기 겨울과 정부 기업에서 보장된 휴무로 폴댄스를 배우고 국내여행을 다니는 가을이다. 나는 그 애들보다 게을렀나? 아니, 아닌 것 같은데.

당장 이탈리아를 다녀오고 빈털터리가 되어 파산신청을 하면 나는 내 나라에서 어디를 갈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집도 차도 없는 사람을 어디서 고용해줄 것인가? 이력서를 작성할 컴퓨터가 없는 사람은? 스마트폰이 없고 거처가 불분명한 사람은? 여성인 나는 지금처럼 선선한 날 길거리에 박스를 깔고 자기에 안전한가? 찌꺼기만도 못한 더러운 식사라도 나를 그나마 안전하게 재워주고 먹여줄 쉼터(스파이크)를 찾을 수 있을까? 게으르지 않아도 내 장기만 못한 급여를 받는다면 한껏 방탕하고 나서의 상황은 어떨까.


지금과 똑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검소해야 하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으려면 샤워시설과 샤워용품이 있어야 하고, 멀쩡한 몰골로 출근하려면 닳지 않은 옷과 해지지 않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 가끔 밖에서 약속을 잡으면 때와 장소에 맞는 차림새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 취향을 반영한 옷장과 신발장도 가지고 싶다. 나는 치장하고 싶은 만큼 나를 위해 소비하고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다. 풍족하지 않지만 썩 아쉽지도 않은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아온 어린 나. 철이 없었던 걸까. 나 좋을 대로 한다고 부러움을 받았던 게 이렇게 스물여덟의 나에게 돌아오는 걸까.​

요즘 젊은이들한테 주식이니 투자니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돈 장난에 끼고 싶지 않다. 복권도 사지 않는다. 누군가는 거액에 당첨될 테고 그게 나는 아니겠지. 하지만 복권에 당첨되면 이런이런 것들을 하고 싶다는 꿈은 꾼다. 그런 것들에 기대하지 않고서도 잘 살아졌다. 지금까지는.

매일 자기 전에 연금복권을 사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한테 갚을 빚과 여유 있는 보증금이 뚫어줄 숨통을 생각하면 우연히 하늘에서 던져주는 돈을 바라게 된다. 예산이 몇십이나 깎였으니 당장 다음 달부터 집을 구하러 다니려던 것이 주춤하게 되었다. 아마 나는 가려던 오피스텔이 아니라 곰팡이나 없으면 다행인 단칸방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인 할머니가 바로 옆집에 살고, 누른 벽지에 방음도 안 되는 셋방살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곳에 화장실과 세탁실은 꼭 방 밖에 나와있다. 직장이 있는 지역에 내가 낼 수 있는 월세로는 그 정도가 최선이다. 이렇게까지 주저리주저리 적어놓고 나니 허탈하게도 현실이 받아들여진다. 이백. 어차피 이 꼴로도 나는 살아가게 될 것이다. 늘 이 일이 하기 싫다고 징징대지만 그렇다 할 재능이나 능력도 없으니 결국에는 다시 서비스 직으로 끌려올 것이다. 뭐, 서른에도 마흔에도 나는 편히 짐을 끄를 방 한 칸 없이 적당히 허덕이며 살고 있겠지. 그러다 또 적당한 때가 오면 어련히 땅 밑으로 들어가겠지. 그날이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고 있다. 나날이 사는 게 힘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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