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홋카이도, 오타루
홋카이도(北海道, 북해도)는 말 그대로 일본 북단에 위치한 큰 섬이다. 면적은 대략적으로 남한의 80%지만 인구는 600만이 채 되지 않는다. 추운 기후에 습윤한 오호츠크 해 해풍은 홋카이도를 눈의 도시로 만든다. 내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몇 장의 사진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난다. 겨울을 싫어한다고? 한번 검색해보라. 내 장담컨대 당신도 그러하리라.
홋카이도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 군대에서였다. 내 청춘의 2년을 묻어둔 강원도 양구에서. 강원도는 이상하게도 눈이 많이 온다. 특히 GOP에는 더욱더. 월, 수, 금 오후에는 식재료를 실은 '밥차'가 오는데, 어느 목요일엔 눈이 정말 깨쳐지게 내렸다. 눈이라는 건 여느 군인에게나 귀찮은 존재지만 GOP 병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적이다. 오늘 눈을 다 쓸지 못하면 내일 밥차는 올라오지 못하니까. 우리는 쓸었다. 목요일 밤과 금요일 낮을 쓸었으니 그래 우린 밤낮으로 쓸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날의 밥차는 올라오지 못했고, 우린 주말 내내 인스턴스 카레와 곰탕을 먹었다.(이럴 때를 대비해서 쌀과 인스턴트는 모든 소초에 짱박아둔다.) 기름진 통조림 곰탕에 밥을 말아먹으면서 생각했다. 홋카이도가 눈이 그렇게 많이 온다는데, 양구가 많이 오는지 거기가 많이 오는지 꼭 가봐야겠다고.
하지만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몇 개나 있던가. 도통 겨울엔 시간이 나질 않았다. 갈 수가 없으니 어쩌나. 혹시나 TV에 홋카이도가 나오면 도끼눈을 뜨고 어디가 눈이 더 많이 오는지 따져볼 수밖에. 아무리 홋카이도라고 해도 내 청춘 2년을 오롯이 바친 양구보다는 눈이 적에 올 거라는, 싸나이 자존심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홋카이도를 찾아보다가 어느새 난 홋카이도랑 정이 들어버렸다. 하도 찾아봐서 유명한 관광지는 눈에 익었고, 어디는 어떤 음식이 유명하고, 대략적인 기후와 날씨는 어떤지도 알게 되었다. 봄의 어느 날 홋카이도를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올해 여름엔 홋카이도를 가기로 했다. 겨울은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정들어버린 그곳에. 그래 정말 멍청한 소리인 건 나도 알지만, 나는 그렇게 7월의 홋카이도로 떠났다.
비행기는 진에어였다. 인천-신치토세공항 항공권을 40만 원 정도에 샀다. 전형적인 저가항공이었다. 심지어 기내식으로 깨초밥을 줬다. 식초 섞은 밥에다가 깨만 뿌려서.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법한 메뉴지만 홋카이도에 간다고 들떠서였을까. 생각보다 먹을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지만, 착가이었다. 겨우 2시간 정도 날아서 홋카이도에 발을 내딛자마자 배가 고팠다. 이게 다 깨초밥 때문이다라고 되뇌이면서 공항에 있는 푸드코트에 갔다. 그래도 이번 여행의 첫 식사인데 어떤 걸 먹을까 조금 고민하다가 우동을 골랐다. 300엔짜리 유부우동이었는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진짜. 나중에 아사히카와에서도 똑같은 간판을 본걸 봐서는 체인점 같았는데, 7박 8일간 먹었던 음식 중 순서를 꼽자면 BEST 3안에 들어간다.
사실 고작 300엔짜리 작은 사이즈가 양이 얼마나 되며 맛이 얼마나 있겠어하면서 걱정 반으로 시켰지만 양도 적당했고 심지어 너무 맛있어서 공항에서부터 이번 여행은 대성공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타루로 떠났다. 오타루에서 2박을 할 것이다. 오타루는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자 만화 미스터 초밥왕 주인공의 고향이다. 왠지 '러브레터'처럼 눈 덮인 겨울에 와야 할 것 같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겨울이 그토록 아름다운데, 눈이 녹아버린다 해도 여름 역시 아름다울게 뻔하지 않은가. 마치 화장을 지운 당신도 아름다운 것처럼.
숙소가 오타루 역 보다는 한정거장 전인 미나미 오타루(남 오타루) 역에서 더 가까워 미나미 오타루 역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니 생각보다 더 시골이어서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지는 어쨌든 낭만적이니까.
출구 표지판엔 올라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려오는 사람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래 어쩌면 잊고만 살았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변명으로 앞서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따라만가는 삶을 살아왔다. 우리 삶은 일방통행이 아닐진대 난 한 곳만 보면서 달려왔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당연히 앞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표지판에 그려진 저 그림대로, 올라가는 이 길은 동시에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선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들을 더 마주치길.
일본풍의 간판에 허름한 식당. 왠지 맛집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본엔 저런 '일본풍'가게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세상천지가 맛집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는 모리노키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도미토리와 2인실이 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일본식 마루와 작은 정원이 있어 고즈넉했다. 이메일을 통해 예약을 하고 따로 예약금을 내진 않았다. 사장님이 영어를 할 줄 한다. 언덕길을 다소 올라가야 해서 겨울철에는 짐을 많이 들었다면 찾아가기가 다소 힘들 수도 있다.
숙소에 우선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더니 드디어 여행의 실감이 났다. 아침 비행기를 타느라 새벽같이 일어나야 해서 다소 피곤했지만, 첫날을 이렇게 보낼 순 없어서 동네를 거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