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이팬을 태워먹고 나서야 너를 사랑한다

이게 다 에콰도르 덕분이다

by 김고양

후라이팬이 망가졌다. 물론 컴퓨터가 다운되듯이 먹통이 된다거나, 핸드폰 액정처럼 산산조각이 난건 아니다. 단지 코팅이 홀라당 다 벗겨지고 안쪽면까지 새까맣게 타버렸을 뿐. 어쩌다 이렇게 후라이팬을 아작 냈느냐면 이게 다 에콰도르 때문이다. 마트에서 에콰도르산 새우 한 뭉텅이를 8천원에 파는데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예전의 나라면 보통 대하라고 불렀을만한 큰 새우였다. (물론 지금은 배운 남자니까 그게 대하 일리는 없고 흰 다리 새우나 뭐 그런 거겠거니 한다.) 어쨌든, 자취 인생에겐 대하든 흰 다리든 그 정도 새우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게다가 소금구이는 내 인생 먹어본 적이 다섯 번이 채 되지 않는다. 8천원이면 한바탕 해먹을 수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치리오.


에콰도르에서 건너온 새우 한 무리를 포획해 잔뜩 들떠서는 그 후라이팬을 꺼냈다. 2년 전 큰 맘먹고 산 후라이팬이다. 자취생에겐 5천원 다이소 후라이팬뿐인 삶이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요리를 자주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열 배도 더 비싼 테팔을 덥석 사버린 것이다. 물론 그 성능이 5천원 짜리에 비길 바 아니었다.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달걀 후라이정도는 깔끔하게 부쳐주었고 김치전 또한 바삭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고급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테-팔, 테-팔' 로고송을 부를 권리까지 얻었으니, 엄청 만족해하며 함께 지지고 볶으며 2년간을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꽃소금 한 겹을 깔고는 새우를 구웠다. 타닥타닥 소금 튀기는 소리가 나는가 하더니, 새우가 익기 시작했다. 아 타닥타닥 소리에 내 후라이팬이 같이 타들어 가는 걸 그때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새우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적당히 단단한 살점은 씹기에 좋았고, 입안 가득 퍼지는 새우 맛은 차라리 황홀했다. 게다가 소금 위에 구워서 새우 껍질을 깔 때 손가락에 소금기가 묻기 마련인데, 간을 맞추기 위해 다른 걸 찍을 필요 없이 손가락을 쪽쪽 빨아제끼면 되니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시간이었다. 설거지를 하기 전까지는...


후라이팬 안쪽면이 새까맣게 그을렸고 코팅은 다 벗겨진 건지, 타버린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지 그을음이 뭍은 거라고, 한 겹 꺼풀 뒤에는 잔기스가 무수한 내 코팅 바닥과 테팔의 빨간색 동그라미가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내 후라이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후라이를 부칠 수 없었다. 전부 다 눌러붙어 자동으로 스크램블이 되었다. 물론 새 후라이팬은 아니다. 그래도, 2년간 볶음밥을 긁어먹던 내 숟가락에, 고기를 뒤집던 스뎅 집게에 무수한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한결같이 좋은 요리를 돌려준 후라이팬이었는데 이젠 간단한 후라이 하나 조차도 할 수가 없다.


작은 상처들에 식용유를 충분히 두르면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간단한 후라이도 눌러붙기 마련이다. 너도 그럴 것이다. 너와 만나며 나는 네게 수많은 상처를 내었다. 무심한 모습이, 때로는 집착이, 이기적인 내 행동이 네게 향했다. 네 코팅이 튼튼해서 일까. 그 상처에 단지 사랑한다는 말과 서툰 내 몸짓을 놓았을 뿐인데 너는 충분히 좋은 연애로 돌려주었다. 사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네게 익숙해진 참이었다. 이 정도면 될 거라고, 너는 그래도 내게 사랑을 돌려줄 거라고.

후라이팬 하나를 태워먹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은 기스들은 어떻게든 되지만, '새우 소금 구이'같이 한계를 넘겨 홀라당 태워먹으면 더 이상 후라이도 부칠 수 없다. 내 너에게 가장 좋은 남자가 될 순 없더라도 널 태워버릴 순 없다. 눌러붙게 할 수는 없지.


네게 전화를 한다. 벅찬 목소리로 사랑을 다시 한번 말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비로소 전한다.


그래 이게 다 에콰도르 덕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화장실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