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안 갔고 네 생각이 났다.
회사를 안 갔다. 간만에 쉰다. 총선에도 주말에도 출근해서 나는 과부하에 걸린 상태였다. 큰맘 먹고 하루를 쉬는 건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오늘 쉬기 위해 어제 야근하며 해놨던 일들에 혹시 실수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유관부서에서 또 새로운 일이 떨어지진 않을까 불안하기도 한 걸 보니, 나도 훌륭한 직장인(혹은 노-예)이 된 모양이다.(오-예!)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골목을 거닐면 문득 서울이 낯설다. 이곳이 내가 아는 그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작해야 회사를 다닌지는 삼 년이 채 되지 않는데, 이렇게도 낮의 서울이 낯설 걸 보면 그 삼 년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매일 지나치는 한강도, 한가한 삼청동도, 조용한 까페도 모두가 낯설지만은 가장 색다르게 다가오는 건 집 앞 골목길이다. 출근길과 퇴근길, 하루 두 번씩은 걷는 골목길이지만 낮의 골목은 사뭇 다르다. 오후 나절에만 볼 수 있는 골목길이 따로 있는 것만 같아 이 세상 어딘가엔 있을 해리포터를 상상해본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전깃줄이 어지러웠다. 이 좁은 골목길을 저렇게 많은 전깃줄이 덮고 있다니, 조금은 경이롭고 약간은 무서웠다. 전봇대 하나가 휘청이는 날에는 마구 영켜 이 거리가 전부 깜깜해지고 말 거야. 전기와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고 전화와 TV가 먹통인 집을 상상하면 누구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터이니, 그래 전깃줄로 연결된 한 칸의 집은 어쩌면 각각의 섬일 것이다.
네 생각이 났다. 20년이 넘게 살아온 너와 나는, 어쩌면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아온 전혀 다른 생명체일 테지. 그러니까 감히 널 이해할 수 있다고, 날 이해해 달라고 말해선 안된다는 걸 안다. 다만 이 세상을 떠다니는 하나의 섬으로써, 네게 가 닿고 싶어. 저기 위태하게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