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동생을 두고 돌아오는 길에
몇 주 전 구의역 9-4번 승강장에서 스무 살 먹은 청춘 하나가 죽었다. 만 스무 살도 아니다. 97년생이니까 말 그대로 파릇파릇한 친구다. 나이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지만은 그래 목숨에도 값이 있다면 어린것이 더 중요하고,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놈이 응당 세상을 양보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구의역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는 것은 부끄럽게도 내 삶에서 이제서야 그를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머물던 그 승강장은 내 자취방에서 겨우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다. 평소에는 도통 갈 일이 없었는데 며칠 전에 동생 자취방에서 돌아오다 보니 문득 구의역이더라. 아 여기였지. 겨우 지하철 한정거장. 무척이나 가까웠구나.
동생은 지방에 있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올해 초에 내 자취방에 왔다. 서울에서 취직을 하든 공부를 하든 알아보겠다고 올라왔는데, 뭐 내 방은 그래도 원룸 중에는 큰 편이니까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침대와 책상 사이엔 딱 1인분의 이불을 펼 자리가 있는데, 거기가 동생의 자리였다. 겨우 형의 자취방에서도 고작 이불 한 장만큼.
한 배에서 나온 피붙이인데 막상 살아보니 맘 같지 않더라. 하루 중에서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없었다. 출퇴근 버스 타고 회사에서 하루를 견디면 집에선 동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이 청소도 하고 밥도 해놓테고 게다가 네가 형인데 넌 좋지 않냐고 물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뭐 자질구레한 집안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하루를 종일토록 혼자일 수 없었다. 특별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던 동생이 바라만 봐도 열불이 일어날 정도로 싫어졌을 때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난리를 쳤다. 아빠가 영진이 이리 보내서 형제 의 다 상하게 생겼으니까 책임지라고.
아빠는 나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동생을 내 방에 보냈다. 항상 그런 식이 었다. 이미 자신이 결정해 놓고 나에게 선택하라는 식. 몇 번의 결정의 순간에서 내가 가진 선택지는 오직 한 개뿐이었다. 하지만 어째 그 선택이 거듭될 때마다 난 불행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따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고 난 그렇게 부모 탓을 하던 참에 동생이 왔다.
잠 못 들던 새벽 세시 전화통을 붙잡고 저 말을 다 쏟아내고 나니까 엄마는 동생의 방을 새로 얻어 주었다. (아마도 부부싸움을 두어 바탕했을게 뻔하다.) 동생의 방은 구의역 근처다. 그러니까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지하철 한 정거장. 이사할 때 동생 짐을 박스 테이프로 둘둘 말아 둘이 나눠 등에 지고 동생 방까지 짐을 날랐는데, 원룸 1층 주차장을 방 한 칸으로 개조한 게 너무 티가 났다. 시부럴 내가 동생을 주차장 바닥에 재우려고 그 지랄을 했구나. 속이 쓰렸다. 주차장에 재운다는 게 그리고 함께 살기엔 내 그릇이 개코만하다는게.
동생을 주차장에 두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타려니 구의역이었다.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그렇게 들었던 그가 바로 여기 있었는데 나는 하나뿐인 동생을 주차장에 재우고 나서야 실감했다. 9-4 승강장. 영국에는 9와 3/4승강장이 있다던데. 거기를 통과하면 마법세계로 갈 수 있다던데. 시부랄 해리포터가 진짜면 좋았을 텐데.
집에 와서 한동안 외면했던 구의역 사고를 검색했다. 아 먹먹하고 슬프다.
나보다 내 동생보다 어린 그 친구가 슬프고, 그놈의 돈이 뭔지 슬프고, 뭐든지 외주로 돌리면 되는 게 슬프고, 주차장이 슬프고, 백오십도 못 받는 내 동생과 이 땅의 청춘들이 슬프고, 옹졸한 내가 슬프고, 오늘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트윗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