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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통을 부리고 똥에 맞았다

함께 간 어느 여행길에서

by 김고양

그러니까 새똥에 맞았다!

하늘이 높은만큼 구름은 가벼웠던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의 어느 날이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한 정말 예쁜 여행이었지만, 어떻게 된 심성인지 잠시만은 혼자 다니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따로 다니는 시간이 어색할 수 있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식성, 취향, 성격이 딱 들어맞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게 어찌 쉽게 가능한 일인가. 안 되는 걸 붙잡고 속 썩는 것보다는 다름을 인정해보자.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리 살아온 존재, 다르기에 이해하려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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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1000엔의 용돈을 들고 두어 시간 따로 오타루를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그 돈을 들고 로손 편의점에 갔다. 어떤 군것질을 할까 하고 둘러보는데, 굳이 따로 다니기로 한마당에 혼자 먹는 게 맘에 걸리더라. 빈손으로 나와 자유를 만끽하며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그 순간 똥에 맞았다.

덥수룩한 머리 위에 뭔가 감촉이 왔다. 지나가는 낙엽이나 먼지겠거니 하며 머리를 털었는데, 웬걸 손에 끈적하게 묻어 나왔다. 이게 어디서 떨어진 건지 생각하면서 하늘을 봤는데, 딱 위 사진 같은 풍경이 눈에 보였다. 다른 점은 단 하나 저 전깃줄에 까마귀 떼가 앉아 있다는 점 하나였다.


와 진짜 맹세코 내가 서있다가 새똥에 맞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감탄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왠지 냄새도 심한 거 같고, 괜히 손으로 만져서 머리는 이미 똥떡이 된 거 같고, 괜히 심통에 혼자 다니자고 한 벌이겠다 싶었다. 씻을 곳을 겨우 찾아서 공중화장실에서 노숙자처럼 머리를 감고 휴지로 물기를 털었다.


왠지 따로 다니자고 한 게 못내 가슴에 걸렸는데, 똥에 맞고 머리도 감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래 어쨌든 함께 있는 사람이다. 약속된 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돌아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똥에 맞은 이야기를 풀면 웃으며 사과를 건네기에도 좋으니까. 일본은 까마귀를 길조로 친다더니, 길조는 똥도 쓸데가 있었다.


나는 똥에 맞고, 그녀는 같이 먹을 르타오도 한 조각 사 왔으니 어쩌면 이 정도면 잘 어울린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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