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랑의 은행잎을 밟는 길
11월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회사는 숫자와 실적으로 이번 달을 기록하고, 나의 부모는 가을 추수를 마무리하는 시기로 11월을 되뇌인다.
나에게 11월이란 노랗게 물든 정문에서 관악구청까지의 기억이다. 즉 11월 7일을 전후로 그 언덕길은 샛노랗게 물든다. 물론, 올해도 어김없이.
하나를 얻었다면 다른 하나는 내놓아야 하는 법이다. 물론 가을길을 걷는 데에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 바로 서러움이다. 이렇게 예쁜 길을 걸을 수 있는 날이 되면, 날씨는 분명 서럽기에 좋다. 내 말은 햇살과 하늘과 단풍은 정말 기가 막히게 예쁜데, 허리와 목 뒷덜미가 서러운 때라는 것이다.
허리가 설웁다는 것은 당신이 이해하기에 쉬울 것이다. 윗옷과 아랫 옷이 만나는 그곳으로 바람이 들이닥치니까. (따라서 원피스의 훌륭함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목 뒷덜미는 무엇인가. 뒷덜미는 설움 감지기 역할을 하는데, 이는 머리를 감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미지근한 물이 목 뒷덜미에 닿을 때 어깨가 움츠러들고 울컥 설움 치솟는다면, 그것은 비로소 11월 초가, 노란 관악의 언덕이, 설웁기 좋은 날이 왔다는 뜻이다.
이런 날엔 목욕탕엘 가자. 문화시민이라면 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어야 하는 것이 규칙이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비로소 온탕에 몸을 담그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설움이 밀려올 것이다. 분명 따스하게 내 몸을 감쌀 뿐인데, 노곤하게 늘어져야 하는 법인데, 11월의 온탕에 몸을 담그면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설움이 오른다. 다소 변태같아 보일 순 있지만, 설움의 온탕은 11월의 특산물이니 우리 모두 만끽해보자.
올 11월 초엔 예상치 못한 설움이 하나 더 있었다.
먼저, 서러움은, 설움은 아마 설익은 울음의 줄임말일 테지. 울고는 싶은데, 울기엔 그 원인이 너무 하찮다는 것을 내가 알아서 울 수가 없는, 그런 설익은 상태.
게다가 농익지 못한 울음을 억지로 없애려다간, 장담컨대 눈물 쏙 뺄 정도로 아프고 곧 후회할 그런 설익은 상태.
그러니까 요는, 난 그렇게 노랗게 은행잎이 물든, 허리와 목 뒷덜미가 서러운, 11월 초의 대중목욕탕에서, 코에 생긴 설익은 여드름에 섣불리 손을 댔고 그 결과 눈물을 쏙 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