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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떨어뜨리기 보다는, 뽑아 올리고 싶어서

면접비를 받고 돌아오는 골목길 모퉁이에서

by 김고양


엄마는 전화를 끊을때까지 묻지 않았다. 하루종일 땅강아지 처럼 땅만 보며 일만 하는 양반이지만 자식새끼 마지막 면접 발표날을 헤아지리 못했을리 없다. 하긴 이 전화도 옆에서 성화부리는 아버지때문에 했겠지. 전화 한 번 해보라고, 물어보지는 못해도 목소리나 한번 들어보자고.


'너는 잘할거여, 너는 뭐든지 니 말하는 대로 했으니께.'


이력서를 쓰면서 혹시나 취업을 못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내게, 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내 부모는 배움이 짧았다. 아비는 차남이었고, 어미는 차녀였다. 둘 다 장남과 남동생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하는 세상을 살았다. 사타구니가 거뭇하기 전부터 돈을 벌어야 했던 그 삶은 아득히 깊지만 결코 넓지는 못하는 우물같은 것이리라. 그런 둘이 낳은 자식은 약간은 다른 삶을 살았다. 책을 읽고 그림도 그렸다.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 앵무새처럼 읊어댈 뿐이어도 나는 영어를 배운 대견한 자식이었다. 그래 리코더 부는법도 배운적이 없는 내 부모에겐, 나는 말그대로 기적이었다.


면접관은 내가 해당 업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저는 직업학교가 아니라 대학을 다니는데요.'라는 대답을 겨우 억누르고 '이 산업에 관심이 아주 많았고, 이러이러한 준비를 했다. 어려서부터 꿈꾸어왔다.' 따위의 대답을 했다. 제국의 황제를, 조금 더 자라선 우주비행사를 꿈꿨었는데 어느새 내 꿈이 회사원이 된 것이 서러워져 목이 막혔다.


면접비를 받고 돌아오는 골목길 모퉁이에서, 평소엔 돈지랄이라며 비웃던 인형뽑기 기계를 마주쳤다. 요즘엔 막대기로 밀어내는 기계 투성인데 아직도 여긴 크레인으로 뽑아 올리는게 있다. 중국 짝퉁일게 분명한 카카오 캐릭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현금도 있겠다싶어 내 인생 처음으로 한판 하기로 했다. 잡았다 싶으면 다시 떨어졌는데 약이 올랐다. '오리야 기다려 내가 뽑아줄게!' 오기에 천원짜리를 두어번 더 넣어서 결국 뽑았다. 인형을 들어 찬찬히 살펴보니 원가가 천원이나 할까 역시 조악했다. 고작 이걸 뽑자고 삼천원을 썼나 헛웃음이 나왔다.



'귀하의 역량은 뛰어나나 모든 분들을 모실 수 없어'


어제,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메일을 또 받았다. 익숙해 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적응은 되지 않았다. 하긴 이별도 매번 심장을 떨구는데 적응 안되는게 한개쯤 더 있는게 무엇이 이상하랴. 도저히 방안에 있기가 싫어 자취방을 나섰다. 노래방 계단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자니, 인형뽑기가 있었다. 이번엔 밀어내는 기계였는데 상품의 퀄리티가 더 좋아보였다. 아이언맨 피규어가 그럴듯해 한번 해볼까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방금 경쟁에서 밀린 주제에 누가 누굴 밀어 떨어뜨린단 말인가. 게다가 상대는 아이언맨이다. 어린애 조막만한 아이언맨이지만, 방금 메일을 받은 나는 도저히 밀어 떨어뜨릴 자신이 없었다.


밀어 떨어뜨리기 보다는, 뽑아 올리고 싶어서 그때의 크레인 인형뽑기로 갔다. 나처럼 퀄이 떨어지는 짝퉁인형들이 한무더기 있었다. 뽑고나면 돈값을 못한다고 후회할게 뻔했지만 이제 그런건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기계 안 모지리들이 이렇게 많은데, 저들도 누군가의 기적일진대 하나쯤은 나라도 뽑아주고 싶었다.


바람이 시리니 따뜻한 내 방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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