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리필 찬가
달궈진 불판에 삼겹살을 올렸다. 가뭄에 장대비가 내리는 듯 속 시원한 소리가 난다. 친구와 함께 앉은 식탁은 말 그대로 일주일의 고된 여정을 씻어내는 단비와 같다. 사회에 던져진지 몇 년 되지 않는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오늘 하루를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삼겹살을 먹자. 그것도 무한리필 삼겹살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조금 시끌벅적한 가게에 들어서서, 자욱한 연기 사이로 빈자리를 찾는다. 그리곤 몇 명인지 말하면 그걸로 끝이다. 더 말할 것도, 몇 인분을 시켜야 할지 고민할 것도 없다.
어릴 적 좋은 일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삼겹살 먹자’라고 만찬의 시작을 알렸다. 잽싸게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불판을 늘어놓으면, 아버지는 랩으로 둘둘 말려 있는 원기둥 모양의 냉동 고기를 썰었다. 원기둥의 지름이 상당해 불판 하나에 한 장의 고기를 올리면 충분했다. 조금 굽다 보면 고기 조각들이 스스로 갈라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자투리 고기를 뭉쳐놓은 고깃덩어리기 때문이었다. 그땐 겹겹이 뭉쳐놓은 고기를 삼겹살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삼겹살의 어원을 두고 친구들과 다툼이 있었던 날도 있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고기가 저절로 갈라진다는 말을 친구들은 도통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내 어린날 ‘조각조각 삼겹살’은 오롯이 맛있었는데.
아빠의 계모임을 따라간 어느 날, 나는 ‘조각조각 삼겹살’이 아닌 ‘진짜 삼겹살’을 처음 먹었다. ‘조각조각 삼겹살’도 맛있었지만, ‘진짜 삼겹살’은 정말이지 맛있어 차라리 황홀할 지경이었다. 아빠의 곗날은 주머니에서 나오는 메추리알을 기다리는 밤이었는데 계모임에서 ‘진짜 삼겹살’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론 아빠를 원망하는 밤이 되었다. 혼자 맛있는 걸 먹고 온다고 투정을 몇 번 했다. 아빠는 더 이상 자랑스럽게 메추리알을 꺼내지 못하고 슬그머니 밥상 한 귀퉁이에 올려놓았다. 그 후로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면 저절로 조각나는 삼겹살이 아닌 ‘진짜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우는 소리를 했더니, 고기 먹을 때의 ‘삼겹살 먹자’ 가 ‘고기 먹자’로 바뀌었다. 한번 맛본 황홀함은 쉽게 가시지 않아 ‘조각조각 삼겹살’을 먹는 와중에도 ‘진짜 삼겹살’ 타령을 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진짜 삼겹살’을 구워주었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남의 땅을 빌려 규모를 늘리고, 땅벌처럼 독하게 일한다고 주위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 때가.
대학을 다닐 때였다. 힘겨워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게 생각과는 달랐다. 청춘, 낭만, 열정, 사랑. 모두 다 듣기엔 달콤하고 멋진 말이었지만 직접 맞닿아 보니 나에겐 하나같이 버거웠다. 처음엔 아득바득 따라가려 애를 썼지만, 애석하게 작은 내 그릇엔 도통 남들만큼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 정도의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덤덤히 살아가면 그만인데, 어리고 서툴렀던 나는 다만 침몰 해갈뿐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삼겹살집에 간 어느 날이었다. 위태롭던 때였기에 취하는 건 금방이었다. 안주가 모자라 추가 주문을 했다. ‘사장님 여기 일 인분만..’ 주문을 다 끝내지 못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일 인분의 삶을 살고 있지 못했다. 일 인분의 학생, 일 인분의 아들, 일 인분의 친구, 일 인분의 사랑. 수많은 일 인분이 있지만 나는 모든 일 인분에서 실격이었다. 밤 같이 까만 새벽에 생삼겹살 일 인분을 앞에 두고 나는 그렇게 시리게 울었다.
한 겨울에서도 가장 추운 어느 날, 내 생애 첫 연말정산을 했다. 혹시 돈을 더 내야 하나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일 인분의 세금을 낼 수 있는 내 현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이마저를 부러워하는 많은 젊음들이 오늘을 졸이고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우리 가족의 지출 내역을 조회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병원비는 수백만 원이었다. 동네 병원부터 옆 도시 대학병원까지. 큰 병에라도 걸린 걸까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당황했다. 평생 땅만 보며 산 인생, 연말정산에 사용내역이 다 나오는 줄 알고 있었을 리 없다. 연말정산 조회 창에 어떤 정보가 나오는지 한참을 물어보던 그는, 전화를 끊기 전 행군을 막 마치고 군장을 내려놓는 군인처럼 툭 말을 던졌다
'농사꾼덜 병원비 이 정도는 하는거여. 농사라고 땅만 파간 몸도 파는 기지'
순간 텅 빈 강당에 전등을 켜듯 머릿속이 차례로 채워졌다. 일 인분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 삼겹살 노래에 응답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테지. 내가 먹은 ‘진짜 삼겹살’은 내 부모의 조각조각 그 어드메였을 게다. 일 인분의 부모가 되기 위해 그들은 일 인분의 친구, 일 인분의 삶, 어쩌면 일 인분의 아들, 딸의 역할도 포기했을까. 애초에 수많은 일 인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젊은 날의 내 순수였을지 모른다. 그래 작디작은 내 그릇에 수많은 일 인분이 아닌, 오직의 일 인분을 담아야 함일뿐.
그는 황급히 말을 뱉었다. 횡설 수설이었다.
'내가 얼마 버는지 아냐. 조수익으로만 치면 솔찮혀. 너는 좋겄다. 돈 잘 버는 아부지 만났응게. 그러니까 걱정은 말어라. 아직은 팔팔하당게. 금강 물은 말라도 니 애비 지갑은 안 마른다고 소문난 거 모르냐. 팔팔허다 팔팔해. 혹시나 걱정은 할 것이 읎다.'
그러니까 나는 무한리필 삼겹살이다. 물론 다 먹고 가게를 나설땐 다음에는 좋은걸 먹으러 가야겠다는 허세 섞인 다짐을 하지만, 다만 이 가게가 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일 인분은 아껴 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