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1. 나는 회사의 컴플라이언스 팀에서 일하고 있다. 쉽게 생각하면 다른 팀들에게 부담을 주는 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사업을 할 때 그 일이 적법하게 진행이 될 수 있도록 절차가 잘 마련되어 있는지, 또 그 절차를 잘 준수하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만약 마련이 안되어 있다면 얼른 제도를 도입하라는 등의 내용을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 팀이다.
2. 그러다 보니 내가 통화하는 내용들은 "이게 이렇게 잘 되고 있을까요?"나, "이런 걸 놓치기 않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같은 다소 무겁고 귀찮은 주제들이고, 안 그래도 각 팀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일 때문에 바쁘고 시간 없는 직원들은 내 전화가 오면 또 무엇을 시킬지 한숨부터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3. 나는 업무량은 많지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상사가 제목처럼 '극T'와 'FM'을 겸비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일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게 이 말이구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4. 우리 업무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업무를 가지고 있는 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팀이 특정 업무를 명백한 근거에 의거해서 지금처럼 업무처리하고 있고, 지금까지 그 부분을 외부 감독기관에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면 그 방식을 인정해 주는 게 맞는 것 않을까?
5. 잘못된 업무처리가 아니고 커스터머에게도 전혀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없다면 향후 외부 감독기관에서 해당 프로세스를 개선하라고 했을 때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5. 하지만 윗 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다른 팀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그들의 주장일 뿐, 본인이 해석한 게 맞다는 주의(본인만의 T)여서, 기존의 업무방식을 본인의 방식으로 바꿔버리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6. 결국 나만 중간에서 윗사람에게 큰 소리 듣고 다른 팀에게는 왜 이렇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미안하지만 해야 된다는 답변만 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7. 왠지 공공의 적이 된 듯한 느낌이다. 바꾸라는 말은 실무자인 내가 해야 하니 정말 곤란한 상황의 연속이고, 다른 팀에서도 이미 문제없이 프로세스가 돌아가고 있는데 그걸 개선하라고 하니 그쪽에서도 도저히 이해를 못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상사는 바꾸지 않으면 임원에게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놔버리니, 다른 팀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시킨 대로 하고 있다.
8. 이제는 나도 이런 중간다리 역할을 하기도 힘들어서, 나는 이제부터 상사가 요청하는 내용을 부서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만 하기로 했다. '부서의 의견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상위 책임자의 의견이고, 중재하려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준으로 입장을 전달하려고 마음 먹었다.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겠다. 일단 나 스스로가 살고 봐야 한다.
9. 나의 상사는 이렇게 해야 회사가 잘된다는 신념(본인만의 FM)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사실 회사가 잘되려면 매출과 이익이 잘 나와야 하는데 이런 행위들은 세일즈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임원들은 그렇게 탐탁지 않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갈 길을 가는 분이다.
10. 물론 법과 원칙, 회사의 내부 규율을 준수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잘 지켜야 하는 것도 당연히 맞다. 그런데 문제없는 프로세스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회사에도 부담을 주는 일이다.
11. 12월에도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근본적인 이유), 그럴 때마다 가지고 있는 주식 오르는 걸 보며 위안을 삼는다.
12.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업팀 소속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겠지만, 이 전 팀이 그리운 건 사실이다. 오다가다 이전 팀 사람들도 마주치고, 가끔씩 점심식사도 같이 하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
13. 이제 올해 업무는 거의 마무리가 됐고 연말까지는 비교적 한가한 시기이다. 내년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텐데 연말까지는 여유를 갖고 멘탈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