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기를 사 오셨다.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했다. 나는 딸기를 씻어 아빠 책상 위에 두고 의자를 끌고 아빠 옆에 앉았다. 나는 방금 식사를 한 터라 조금 배가 불렀지만, 열심히 꼭지를 따서 먹었다.
아빠는 인터넷 맞고 고수다. 5(five)고에 광박, 피박, 흔들기, 쪽, 싹쓸이 등 점수를 벌릴 대로 벌려놓는다. 200점, 300점 이상 ‘나서’ 이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내 쪽으로 고개를 스윽 돌렸다. 아빠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떠냐?” “잘하지?”
“응…” “잘한다” “아빠 최고”
칭찬을 듣고는 더 뿌듯해지셨는지 히히히 좋아하신다. 인터넷 맞고는 속임수가 없다. 이기고 지는 것은 확률이다…. 아빠는 확률로 5 : 5 승부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런 것치고 아빠는 미세하게 승리와 패배를 조절하고 있었다. 이길 때는 ‘압승’을, 질 때는 ‘가장 안 아픈 패배를’ 의도적으로 조정했다.
마사토끼의 만화 <킬 더 킹>이 떠올랐다. 킬 더 킹은 '왕이 되려는 자들'의 두뇌 싸움을 그린 웹툰이다. 배경은 현대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사라진 줄 알았던 '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세계관이다. 처음부터 ‘왕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키워진 아이들이 있다. 그곳에서 자란 ‘아리’는 같은 보육원 출신 ‘지훈’의 도움으로 연전연승한다. 그냥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 승리다.
상대방의 ‘완패’가 아니라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불복할 수도 있다.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 그 상태에서 패배해야만 얌전해진다.
왕은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스포츠나 시험이었으면 패배나 실패를 극복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일이겠지만, 이건 왕게임이다. 왕이 될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져서는 안 된다.
【왕이 될 힘이 있다고 과시해야 하기에, 항상 압승을 노린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승리, 능력의 압도적인 차이를 통감하는 승리. 뇌리에 새겨진 패전의 기억이 다시는 왕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한다.
“짜식, 마음에 든다”
“끝까지 안 나가고 바득바득 이기려고 하는 거”
“맘에 들어”
우하하. 그 순간 아빠는 호걸이었다.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인가. 아빠에게 참패당한 유저의 캐릭터는 머리에 빨간 뿔이 난 채로 화를 내고 있었다.
“뿔딱지 나면 뭐 해” “뭐 어떡할 건데? 수가 있어?”
아빠 캐릭터는 잘 보이지도 않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 있었다.
20.02.07
「왕이 될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