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의 미학
글은 길게 잘 쓰기보다 '짧게 잘 쓰기'가 어렵다. 똑같은 정보와 논리를 담는다면 2,000자보다는 1,000자로 쓰는 게 낫다.
- 유시민
왜냐하면 경제적이다. 군더더기가 사라진 글은 예술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짧게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량에 맞게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500자; 1,000자; 2,000자; 어떤 분량으로 해도 무방하다. 꾸준히 하면 정보를 압축하고 논리를 정돈하는 습관이 든다.
그는 칼럼 쓰는 일이 흥미진진했다며, '분량 정해 쓰기'의 예로 삼는다. 보통 신문 칼럼은 띄어쓰기 포함 2,000자 정도라고 한다. 그는 국내외 이슈를 두루 살펴 화제의 사건을 다뤘다. 크고 복잡한 것은 넘긴다. 2,000자에 맞지 않고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도 건너뛴다. 이야기를 억지로 늘이면 헐렁한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의 눈은 세상을 2,000자 규격으로 보는 데 적응했다. 칼럼 쓰기는 편했다. 대신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칼럼 한 편으로 다룰 수 있을 만한 것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글 쓰는 호흡도 2,000자에 맞춰졌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신문사 기자들은 몇 년 동안 1,000자 미만의 짧은 보도 기사만 쓴다. 글의 호흡이 짧아진다. 긴 글을 쓰지 못한다. 이를 피하려면 가끔은 더 짧거나 더 길게 써 버릇해야 한다.
단문 쓰기
글은 단문이 좋다. 단문은 그냥 짧은 문장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길어도 주어와 술어가 하나씩만 있으면 단문이다.
주어와 술어가 둘이 넘는 문장을 복문이라 한다. 정의하자면 둘 이상의 문장을 대등하게 잇는 '중문',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의 성분이 되는 '좁은 의미의 복문', 중문과 복문을 모두 가진 '혼성문'을 한데 묶어 복문이라 할 수 있다. 복문은 강조하고 싶을 때나 정확히 단문으로 뜻을 나타내기 어려울 때 쓰는 편이 좋다.
그는 노래를 예로 든다.
가수가 고음을 시원하게 잘 내면 좋다. 그런데 어떤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으로만 부르면 어떨까? 청중이 감탄할 수는 있지만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래는 높은음과 낮은음이 잘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고음은 '클라이맥스'에 잠깐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야 듣는 사람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복문을 쓰면 읽는 사람이 힘들다. 복문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그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집필할 당시 복문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복문을 많이 썼고, 단문으로 써야 하는 이유를 몰라 안 썼다고 한다. 단문은 장점이 많다. 뜻을 정교하게 전달한다. 쉽게 쓸 수 있다. 주술 관계가 하나라 문장이 꼬이지 않는다. 그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단문으로 썼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거라 회고한다.
군더더기 줄이기
긴 글보다는 짧은 글쓰기가 어렵다. 짧은 글을 쓰려면 정보와 논리를 압축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압축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 문장을 되도록 짧고 간단하게 쓴다.
둘째, 군더더기를 없앤다.
문장을 짧게 쓰려면 앞서 말했듯 분량을 정해 압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단문 위주로 써야 한다. 주어와 술어가 둘 이상 넘지 않게 써야 한다. 중문, 좁은 의미의 복문, 혼성문 사용을 피해야 한다.
마지막은 군더더기를 없애는 것이다. 무엇이 군더더기일까. 없더라도 뜻 전달에 지장 없으면 군더더기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접속사(문장 부사); 둘째, 관형사와 부사; 셋째,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관형어나 부사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장 성분이다.
없어도 좋은 접속사는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 문장을 잇는 사이에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 같은 접속사를 넣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문장과 문장이 자연스레 연결되면 접속사는 불필요하다. 부사와 관형사도 적게 쓸수록 좋다. 같은 글자를 반복한 흔적이 있다면 운율을 해치므로 문장을 고쳐야 한다. 화려함과 기교에 치우친 문장 성분도 걸러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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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을수록 좋다」 덜어냄의 미학 20.03.03.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