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생년 끝자리가 3과 8인 사람이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줄 서서 산다지만 나는 좀 늦었다. 정오가 못 되어 동네 약국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약국 문 앞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마스크 품절되었습니다'
'또 못 사네'
저저번 주부터 마스크를 한 개도 못 샀다. 여유 있다고 생각한 마스크도 떨어져 간다. 혹시나 싶어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사님은 통화 중이셨다. 통화가 끝날 때까지 잠깐 서서 기다렸다. 전화 속 상대방도 마스크 재고에 관해 묻는 듯했다.
"네 어떤 일로?"
잠깐 수화기를 놓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오늘 마스크 품절인가요?"
"네 품절이에요"
자동응답기처럼 빠르게 말하시고는 수화기로 돌아가셨다. 내 질문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기에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약사님 표정은 싸늘하게 굳더니 나를 향해 날카롭게 말씀하셨다.
"품절됐다니까요"
그걸 몰라서 돌아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2주 전에도 마스크를 사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공적 마스크제 시행으로 하나도 사질 못했다. 내가 약사님을 오래도록 붙잡고 귀찮게 군 것도 아니었건만. 난 조금 움츠러든 채로 질문을 이어갔다.
"아.. 다들 몇 시쯤 와서 사 간 거예요?"
"일찍 다 팔렸어요"
"9시쯤 와야 하나요?
"아니요. 그런 거 없고 저는 가져다주는 대로 받는 거예요"
오늘 어땠냐고,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 건지 묻는 건데. 정론으로 답하신다. 아무래도 이런 문의를 수없이도 받으신 거겠지. 이해는 됐지만 야속했다. 내가 대표로 짜증의 표적이 되다니.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약국을 나오면서 찝찝한 기분이었다. 여길 다니면서 한 번도 저러신 적이 없었는데. 코로나가 당신을 예민하게 만들고, 동네 주민의 작은 문의가 모여 사생팬에게 시달리는 것 같았겠지. 약사인 당신의 처지를 이해해본다. 약사 본연의 업무를 하기보다는 '마스크' 파는 사람이 되어버린 요즘일 것이다. 약국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문의에 답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약국 문을 닫기 전까지도 이어졌을 것이다. 직업이 약사이기 때문에 퇴근해도 아는 지인이나 가족, 친구들이 이것저것 물어봤으리라. 이런 일이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후부터 매일매일 판에 박은 듯 어지러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내 탓도 아니고, 주민들 탓도 아니고, 당신 탓도 아니다. 작은 개인으로서 약사인 당신의 정신건강을 걱정해본다.
「이 시국에 약사인 당신이 화가 난 이유」 20.03.11.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