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하다"
"나는 강하다"
일을 시작한 첫 주에는 체력적으로 고된 나머지 주문을 외우면서 버텼다. 소년만화에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진짜로 힘이 났다. 돈은 돈대로 부족해서 '시프트'를 무조건 풀 근무로 짜 달라고 부탁드렸다. 일본의 아르바이트는 시프트제로 운영되는데, 일하는 요일과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몇 시에 시작하든 나는 마감까지 일했다. 명목상 마감 시간은 오후 10시 반이었지만, 보통은 자정이 돼서야 일이 끝났다. 그날그날 방문하는 손님의 수와 키친 멤버 차이로 수월성이 달라졌다. 일의 마무리는 언제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까지였다. 깨진 식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따로 커다란 봉투에 담아 지하에 있는 처리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바코드를 붙이고 종류별로 분류한 뒤 쓰레기 더미 위로 던져 올렸다.
주방 일에 적응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세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설거지를 맨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주방에서 착용할 수 있는 장갑은 손목까지 오는 비닐장갑뿐이었다. 가장 큰 사이즈를 껴도 싱크대 가득 찬 물이 속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물이 찬 채로 일을 하면 손이 더 불기 때문에 맨손으로 하는 것이 나았다. 날이 갈수록 손이 갈라지는 걸 보며 핑크색 고무장갑을 쓰면 안 되겠냐고 건의를 했다.
"일본에서는 그 고무장갑을 식당 주방에서 쓰지 않아"
별일이었다. 그럼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손이 망가지도록 설거지를 한단 말인가? 내 손... 내 피부... 섬섬옥수라는 칭찬을 들어마지 않던 내 예쁜 손이...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나는 도쿄의 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둘째,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했다. 가족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랑 같은 돈 받고 같은 일을 하는 처지에 자꾸만 나한테 의지하니까 죽을 맛이었다. '동기'라 할 수 있는 쇼 상의 설거지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그녀는 앞서 말한 비닐장갑을 끼고, 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만 설거지를 했다. 싱크대 바닥에 가라앉은 식기를 나에게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보다 못한 점장님은 나를 설거지 쪽으로 보내고 쇼 상에게는 조리를 가르쳤다.
나는 아쉽게도 '좀 천천히 뜸 들여' 하지를 못했다. 특히 같이 들어온 쇼 상만큼 천천히 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독차지한 설거지에 팔이 아플 때마다 쇼 상을 원망 섞인 눈길로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또 다른 주방 아르바이트생 아주머니는 자꾸 9시쯤 일찍 퇴근해야 한다며 나에게 일을 맡기고 갔다. 미얀마에서 일본에 온 지 1년 정도 되셨다는데 요령을 피우시는 건지, 정말 사정이 있으신 건지. 사정이 있다손 쳐도 매번 나에게 마감을 맡기고 귀가하셨다.
셋째, 식사 제공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거지 근성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르바이트를 식당으로 지원할 때는 일도 구하고 끼니도 해결하려는 일석이조의 설계가 있었다. 식사 제공은 없어도 직원들에게는 매장의 음식이 반값이었다. 이곳은 백화점 안에 있는 '애슐리' 정도의 식당이었기 때문에 반값도 그리 작은 돈이 아니었다.
돈 욕심에 급격히 늘어난 일로 죽을 것 같았지만, 주문을 외며 첫 적응기를 버티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나에게 주방 일을 가르쳐준 첫 선임은 시니어 '나인'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얀마 출신으로, 본국에 돌아가 일식당을 차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금방 배울 것 같아요 키무 씨는"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본국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