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나 좀 이슈 됐어요
"엄마는 다음 생에 태어나면 너로 태어나고 싶어. 넌 마음의 소리를,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잖아. 엄마는 아무리 해도 그게 안 되더라고. 엄마는 이 험난한 세상에 네가 태어났을 때 그저 여기저기 상처받지 않고 우아하게 앉아 글만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 세상은 너무 살기 힘드니까."
드라마에서나 듣던 얘기를 엄마한테서 듣다니. 놀라움도 잠시, 엄마의 말에 울컥했다. 사실 한 10% 정도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23살부터 '작가'타이틀을 달고 일했지만 번듯한 결과물 하나 없는 나를 엄마는 늘 '10조 작가'라고 불렀다. 돈 많이 벌라는 뜻으로 전화할 때마다, 집에 갈 때마다 '10조 작가님 오셨어요?' 라며 나를 반겼다. 번외로 친오빠는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 '10조 과장님'으로 불렸다. 지금은 차장으로 승진해서 '10조 차장님'이 되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날엔 나 역시 아무 글도 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내 뇌에 들어있는 생각들도 나와 똑같이 MBTI I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트북 앞에 켜 놓은 하얀 화면과 낯을 가리는지 도저히 뇌를 빠져나와 손가락을 거쳐 화면에 쓰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꼭 글이 미치도록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바로 출근해서 할 일이 잔뜩 쌓여있을 때. 생각해 보면 난 늘 힘들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내려 갔다. 분노가 나를 잡아먹었을 땐 욕만 쓴 적도 있고, 영화 '데스노트'가 나왔을 땐 나만의 데스노트를 만들기도 했었다. 우울에 잠식당했을 땐 '죽고 싶다'만 A4 용지 빼곡하게 적은 적도 있었다. 스트레스받고, 이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것처럼 외로울 때 나는 늘 글로 감정을 풀어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자고 일어난 후 커피를 옆에 두고 글만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아, 나 지금 많이 힘들구나'라고 깨닫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 그런 가보다.
과거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지원한 드라마작가교육원에 처음 갔을 때, '드라마란 어떤 이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매우 어려운 것'이라 배웠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라면 뭔가 억울하다. 하나도 순탄하지 않고, 너무 혼자서 고군분투하게 내버려두는 것 같아서. 드라마엔 그래도 주인공이 지치지 않도록 조력해 주는 사람을 꼭 설정하는데, 왜 내 인생엔 그런 조력자가 없을까 억울하기까지 하다.
일기장에 일기를 쓸 때도 나를 속였던 지난날들이 많은데, 하물며 가족에겐 얼마나 나를 숨겼겠는가. 힘들어도 괜찮다고, 밥을 먹지 않아도 먹었다고, 죽고 싶어도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그렇기에 가족을 난 조력자라고 할 수 없다. 난 그들의 조력자가 되고자 하지만, 그들은 나의 조력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난 나를 항상 그 누구보다 뒷전으로 두는 것처럼, 나에게 가족은 1순위, 연인도, 친구도 1순위지만 나 자신은 늘 2순위, 3순위... 어느 날은 순위권 밖. 이런 생각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가벼운 마음도 있다.
혹시 이 짤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요즘 내가 즐겨하는 생각이다. 행동에 자신이 없을 때마다 저 말을 속으로 생각한다. 어쩔 땐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저 말을 내뱉는다.
한강 정도야 되어야 책 냈다고 이슈가 되는 거지.
내가 책 게 뭐... "근데?" 이런 거죠. 우리 집에서나 좀 이슈 됐어요.
저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내가 뭔가 실수했을 때, OO 정도가 되어야 OO 했다고 이슈가 되는 거지. 내가 OO 한 게 뭐... "근데?" 이런 거죠. OO에서나 좀 이슈 됐어요.
가끔 무언가를 할 때 주저하게 된다면, 저 말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생각보다 내가 남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가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만큼, 그들은 더 나에게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