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인생영화로 못 넣는 이유
주말이 시작됐다. 어제 영화관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본 탓인지 오늘 아침이 조용-한 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3시간을 내리 펑펑 터지고, 투두두 거리는 총소리를 듣다 보니 귀도 눈도 뇌도 마음도 평화가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인생영화로 꼽는 다길래, 재개봉 소식을 듣고 보자는 남자친구의 말에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작 20분 만에 나는 영화관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소음과 화면에 예민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통스러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어떤 장면에선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기도 했다. 왜 이 영화가 재개봉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내가 좀만 더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개봉은 반대했을 거다.
그렇게 피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영화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육군 제2레인저대대 밀러 대위가 독일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고, 그 와중에 끝까지 총으로 탱크를 폭파시킨 후 자신에게 온 라이언 일병 (리뷰를 찾아보니 원래는 이병인데 한국에선 일병이 더 익숙한 단어라 일병이라고 제목을 번역했다고 한다.)에게 하는 말에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팡- 터졌다.
Earn this, Earn it.
"꼭 살아서 돌아가. 우리 몫까지 값지게 살아."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의 감정과 서사를 따라가며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에서 눈물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를 살리기 위해 죽은 전우들을 생각하며 가치 있게 살아가라는, 그래서 그들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나는 그 조용한 영화관에서 홀로 코를 훌쩍이며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카디건 소매로 슥슥 닦아가며 울었다.
왜 많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남자친구가 나에게 "어때? 인생영화가 될 거 같아?" 묻길래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의아하다는 듯이 "어? 그래? 난 이거 인생영화 중 하나인데"라고 말했다. 그에게 나는 왜 인생영화로 놓고 싶지 않은지 그 이유를 이어 말했다.
"이게 인생영화로 들어가면, 내가 언젠간 다시 한번 봐야 할 영화 혹은 죽기 전에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여야 할 텐데... 난 이 영화를 다시는 못 볼 거 같아.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고, 너무 슬펐고,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난 이 영화가 너무 좋고, 슬프고, 잘 만든 영화라고 최고라고는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인생영화에는 넣고 싶지 않아."
정말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 이제야 끝났다는 온몸에 에너지가 쫙 -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을 나왔다. 집에 가면서도 영화관에서 봤던 잔상들이 머리를 휘젓고 다녀 괴로웠다. 이 전에는 전쟁 영화를 어떻게 봤나 모르겠다.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등
인생영화에 넣기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못 넣었지만 영화는 최고의 영화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였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 중 최고가 가장 큰 칭찬이기에 이 말밖에 할 수 없는 나의 문장 구사 능력 부족함에 화가 날 정도로 영화는 정말 최고 중에 최고였다.
마지막 저 대사가 자고 일어난 조용한 토요일 아침,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가슴에 남아 나를 울린다. 저건 라이언에게만 하는 메시지가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저 영화를 또 보게 될 먼 훗날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아무리 팍팍하다, 힘들다, 미래가 안 보인다 투덜거리지만 결국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 편안함을 그나마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 러시아, 이스라엘 - 이란만 봐도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건지 체감이 된다.
매사 최선을 다해 살 수는 없더라도, 죽기 전까지 부끄럽지 않게 가치 있게 살자는 메시지는 나에게 온전히 전해진 거 같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마지막 라이언이 자신의 부인에게 '나 가치 있게 잘 살았냐고 물었을 때' 늘 옆에서 지켜본 가족이 '훌륭했어요'라고 대답해 줄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 앞에 섰을 때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 수 있도록.
서른 살이 되니 이제 '가치'라는 단어와 가까워지는구나.
늘 낯가렸는데.
이제 좀 친해지자 우리.
앞으로 내 삶에 '가치'있는 '삶'이라고 함께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