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할아버지 덕후의 일기

쿨하지 못해 미안해 할아버지

by 김결 kimgyoel

나에게 살면서 가장 슬펐던 일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이번에 '첫여름 완주' 북토크를 가게 되어서 책을 읽다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주인공 손열매가 잠에 들면, 꿈엔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그리고 둘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사실 내가 할아버지를 떠올린 건 소설 속 손열매와 할아버지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기도 했지만, 손열매가 할아버지를 잃고 들었던 감정을 읽고 나서였다.



(...)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열매도
태풍으로 집 벽이 날아가 버린
동화 속 돼지 삼 형제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한동안 요양병원에서 지내느라 자주 만날 수 없었는데도
'어딘가에' 할아버지가 있는 것과
'어디를 가도' 없는 것은 너무 달랐다.
항상 허전했다.
<첫여름 완주 中>



정말 너무 맞는 말이었다. 생각날 때마다 '어디로든' 전화를 걸어 진지 잡수셨냐고 물어볼 수 있는 것과, 명절 때 든든히 드시라고 제사상을 차려 놓고 드셨는지, 오시긴 하셨는지 알 수 조차 없는 것은 너무 달랐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정말 나에게 '죽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죽음'은 이렇게 가까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그러다 온전히 내 옆에 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매 순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힘들어하지도 말라고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사진첩을 들어가 그날의 사진을 봤다. 이제 보니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단정히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찍은 사진이었다. 아프기 전, 얼굴에 살도 있고, 주름은 덜한 사진이었다. 할아버지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건 백발의 머리카락뿐이었다. 언제부터 할아버지는 이 사진을 찍어 놓고 간직하고 있었을까.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는 기분은 무엇이었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울고, 웃다가도 울고, 집에서도 울고, 울고, 울었다. 저마다 할아버지를 향한 애정이 다르기에 그렇게 우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나는 어디 하나 나사 빠진 애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소설에서처럼 꿈에 할아버지가 나왔던 적이 있었다. 다만 내 꿈에선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라는 말처럼.



할아버지의 기일이 지났다. 벌써 3년이 흘렀다. 마음 한 구석에 방을 만들어 그곳엔 온전히 할아버지만을 담아 가끔 들여다보고 있는데, 며칠 전 아빠의 모습에서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아빠는 충청남도 태안, 할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내려가 할아버지가 키우던 것들을 아빠가 이어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늘 나와 오빠에게 '시간 내서 와라. 맛있는 거 먹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늘 할아버지가 하던 말투를 그대로 아빠가 쓰고 있었다.



"시간 되면 아빠한테 오너 맛난 것 먹자"

"시간 되면 할아버지한테 오너 맛난 것 먹자"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전화를 드리면 할아버지는 꼭 이렇게 말했는데 이제 그 말을 아빠가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또 내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한 편으론 불안해지기도 했다. 아빠의 시간도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일까 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 봐.



왜 모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후회인지. 다음 생에 다시 한번만 할아버지를 만나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땐 내 모든 걸 다 바쳐 할아버지를 사랑할 거라고 뒤늦게 후회하며 간절히 빌기만 하는 나는... 불효손녀였다. 늘 할아버지를 기다리게 했으면서, 다시 만날 기적까지 꿈꾸는 나는 내가 생각했도 나쁜 손녀인 거 같다.



SNS에 아직 조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아 함께 지내는 사진이나, 스토리가 올라올 때면 혹은 드라마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명대사를 날리는 할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늘 한결같이 "나는 네가 제일 예쁘다"라고 말하던,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



7월 4일, 할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사실 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각만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후드득 떨어트리기에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들여다봐야 또 한 번 꿈에 나타나 주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3년이 지나 글로 다시 한번 할아버지를 이야기를 꺼내본다. 왜 자꾸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것에 집착을 하게 되는지, 쿨하게 보내던 20대도 있었는데 이젠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에 아쉽고, 그 아쉬움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 상황도 아쉽다.



할아버지, 내가 쿨하지 못해 미안해. 그러니 꿈에 자주 찾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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