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체어스/북저널리즘 합류 벌써 1년
일본은 국제부 기자 생활을 짧지 않게 했으니 일하면서 취재로 몇 번 갔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비용이 덜 드니까 여행도 자주 다녔다. 대충 계산해도 스무 번은 갔던 것 같다. 그래도 2주 이상 생활해 본 경험은 없다. 일어를 하고 일본지역학 공부도 했지만, 나는 일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체감해 본 적 없는 것 중 하나가 4월 분위기다. 일본에서는 4월부터 회계연도가 시작된다. 학교도, 기업도, 정부도. 4월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설레고 긴장되고 두렵기도 한 진짜 새해를 맞이하는 때. 마츠 다카코가 대학 신입생으로 나오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는 우리나라였다면 '3월 이야기'쯤 됐겠다. 그래도 의미가 꼭 같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학교만 3월에 시작하지 회계연도는 1월부터니까.
나에게 그동안 4월은 '벌써 3개월이나 갔구나' 하는 아쉬움과 초조함을 주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그랬던 4월이.. 올해는 참 특별하다. 스리체어스에 첫 출근해서 북저널리즘 시리즈의 본격 론칭을 시작한 것이 2017년 4월이다. 정확히 4월 3일, 4월의 첫 월요일에 출근했다. 진짜 새해를 맞아, 진짜 새 출발을 시작했던 지난해 4월. 그래서 올해 4월도 어쩐지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정해진 트랙 위에서 달리는 것 외에는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전직인 기자가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적으로 일해야 하는 직업임은 틀림없다. 다만 흔히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기성 미디어 기업-설립 후 나름의 역사를 쌓아온 회사에서 고용인으로 일했던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큰 틀에서 조직의 방향이 있고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지금은 단순히 적은 인원과 함께 일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중대한 결정까지 내가 내려야 한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는, ‘트랙을 벗어났다’는 느낌을 줬다. ‘길이 없는 곳에도 길은 있었다’는 서태지(오빠)의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하고 살았었는데..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힘든 건 없냐?” 매번 대답한다. 없다고. 내가 일에 미쳐 살아서, 일이 놀이처럼 재미나서, 그런 게 아니다. (대표님 계시지만) 내가 벌인 일이고, 내가 한 일이고, 내가 결정한 거라고 믿고 일하고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트랙을 돌면서 랩타임 단축을 목표로 뛰는 게 아니다. 흙과 모래가 뒤섞인 광야를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로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가끔은 암담하지만, 가끔은 또 생전 처음 보는 들꽃들도 만난다. 무엇보다, 내가 뛰쳐나와 내가 걷기로 결정한 일인데 힘이 들 게 뭐가 있겠나. 다만 책임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할 뿐이다.
대표님과는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로 10년 전쯤에 만났다. 사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 호감 가는 비즈니스 관계 정도? ㅎㅎㅎ 그래서 인연이란 참 소중하고 또 무섭다. 몇 년만에 연락드려서 개인적인 일에 대한 도움을 좀 구하다가, 북저널리즘이라는 콘셉트에 대해 들었고 그게 계기가 되었다. 내 삶에서 손에 꼽힐 만큼 중요한 결정이 맛없는 서촌 오뎅집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참 ...... 점선을 적당한 문구로 채워보세요
지난 1년 간의 일을 떠올려 본다. 많은 한계를 부쉈다고 생각하면서도, 게으른 천성은 어쩔 수 없었다는, 자신이괴로운감정도 밀려온다.
분명한 건, 지금껏 그 어떤 1년도, (신생아기 제외) 이렇게 알차고 변화무쌍하고 보람 있지는 않았다는 거다.
(대문 사진은 이사 오기 전 평창동 사무실 입구에서 발견한, 아스팔트 뚫고 피어난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