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를 읽고
가장 많이, 자주 쓰이면서도 잘 쓰기는 어려운 글이 리뷰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소설, 시, 수필 같은 순도 높은 창작에 비해 접근하기 쉬운 리뷰를 먼저 쓴다. 영화, 책은 물론 온갖 텍스트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때에는 SNS에 공유하면서 ‘웃긴다’ 정도만 쓰는 것도 리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리뷰는 어렵다. 원전을 ‘복붙’하는 것만으로는 읽는 만족감도, 쓰는 만족감을 느낄 수도 없다. (표절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리뷰는 ‘원전을 보고 싶게 만든다’는 목적이 분명한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전을 어디까지 인용해야 내 생각을 명쾌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에서 시작된 고민은 리뷰를 보는 독자에게 ‘스포’가 되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되는, 읽고 싶어지는 인용의 범위는 어디일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도착한 ‘서울 리뷰 오브 북스’ 창간호를 읽었다. 열세 편의 글 가운데 가장 멋진 리뷰는 조문영의 ‘’가난 사파리’가 ‘가난 수용소’가 될 때’였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빈곤층의 고통을 다루는 미디어의 시선을 비판하는 도입부부터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가난에 대한 ‘개입’을 키워드로 한국 미디어를 보는 저자의 시각과 텍스트에 대한 리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무엇보다 리뷰 텍스트인 <가난 사파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래퍼 로키로 알려진 스코틀랜드 출신 대런 맥가비가 빈민 지역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면서 느꼈던 감상과 비평이 힙합처럼 거칠게, 동시에 비트를 타고 긴박하게 펼쳐진다’는 문장만으로도 이 책 <가난 사파리>가 읽고 싶어졌다. 리뷰어로서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직시하는 시각에도 감탄했다. ‘나처럼 가난을 비판적으로 읽는다고 믿는 (혹은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주로 체제, 구조, 시스템과 같은 언어를 선호한다.’와 같은 문장이 그렇다. 다른 사람의 언어를 인용해 자기 언어로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생생한 표현에도 밑줄을 그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성폭행과 외할머니로부터의 거부,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을 차례로 거치다 고립에 다다른 엄마를 다시 보았고, 그의 눈에서 “연결되길 갈망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절망감”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았다. 엄마가 죽은 후의 일이다.’ 글은 스코틀랜드의 빈민촌에서 빠져나와 가난을 마주하고, 쓸 수 있게 된 저자의 이야기를 코로나 시대의 한국 쪽방촌, 홈리스, 학대 아동에 대한 이야기로 잇는다. 역시 좋은 글은 세상에 대한,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북저널리즘 콘텐츠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할까>의 저자이기도 한 김준혁의 <코로나19, 공포를 활용하는 자는 누구인가>도 좋았다. 책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에 대한 리뷰인 이 글은 일일 감염자 1000명을 넘어선 지금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감염병을 다루는 전략의 핵심을 언급하고 있다. ‘공포 통제’다. 마지막 문장은 팔뚝에 돋아난 소름과 함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감염병으로 경제 활동을 통제하려 할 때, 경제 활동을 이유로 감염병 방역을 좌우하려 할 때, 사달이 난다. 그것은 대중의 공포를 활용하기에, 우리는 지금 물어야 한다. 코로나19 앞, 공포를 활용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렇다. 경제를, 방역을 경제와 방역 이외의 기준으로, 목표로(아마도 정치겠지) 다룰 때 경제도, 방역도 무너진다.
별책에 실린 김초엽 작가의 소설 ‘선인장 끌어안기’는 김 작가의 글이 늘 그렇듯 정말 재미있다.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는 킥킥 웃으면서 읽었다.
필자들의 연구 분야, 관심 분야 텍스트 리뷰의 경우에는 해당 분야가 친숙하지 않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낯선 순우리말 표현과 딱딱한 한자 전문 용어가 뒤섞여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글도 있었다. 원전을 요약, 소개하는 데 그치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전문성과 깊이를 갖춘 콘텐츠 펴내는 일을 하면서 많은 저자들을 만났고, 쉽고 정돈된 글을 쓰는 전문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국만큼 글 잘 쓰는 전문가 없는 나라 없다는 얘기를 반박할 때 이 리뷰집을 근거 자료로 내밀어도 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또 다른 아쉬움은, 텀블벅 후원까지 해서 구입한 책이 찌그러져 있었다는 것... 서가에 꽂았을 때 딱 보이는 책 등이 울퉁불퉁 찌그러져 있어서 볼 때마다 아쉽다.
그리고 책의 크기가 이것보다 작았어도 좋았겠다 싶다. 책이 커서 들고 읽기가 불편했다. 화보가 있어서 큰 페이지가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자간, 줄 간격 모두 큰 편이라 페이지 전체가 여유로우니 줄여도 무방할 듯하다. 명조 계열 글씨체가 후반부에 고딕 계열로 바뀌는 것도 큰 이유를 알 수 없고 어색했다. (고딕은 스크린에서도 그렇지만 인쇄 매체에선 특히 읽기가 더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