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보고 왔다
대학 시절 커뮤니케이션 수업 교재로 읽었던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는 '사랑으로 무장한 저항 투사'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을 결론이자 제언으로 내놓고 끝난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우리를, 사회를 어떻게 흔들어놓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의 결론이 '사랑'이라는 것은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사랑/희망/행복 이런 단어를 입밖에 내면 온몸이 굳어 돌이라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약간 좀 오래 전의)나로서는 기술과 사회, 미디어에 대한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비평을 이어가던 포스트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는 사랑 타령을 할 거라는 그 예고가 두려웠다. 무책임하고 유치할 것 같았다. 사랑이면 다 되는 줄 아나. 사랑으로 무장하고 저항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거냐고요.
그럼에도 나는 포스트만 선생님의 혼이 담긴 사랑 무장론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케이션 비평 서적을 읽고 눈물을 흘리기는 또 처음이었다. <테크노폴리>는 월터 J 옹의 <구술문화 문자문화>와 더불어 수업 교재 읽고 울었던 다시 없을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주말에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와서 오랜 시간 <테크노폴리>를 떠올렸다. 사랑이야말로 무장, 저항, 투사와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했다. 사랑이 없으면 싸울 수가 없다. 사랑은 의지이고, 꿈이고, 힘이다. 사랑은 우리를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강하게 만든다.
언어장애가 있는 일라이자는 60년대 소련과의 과학기술 전쟁을 벌였던 미국의 볼티모어 어딘가에 있는 항공우주연구센터의 청소부다. 일어나는 것부터 도시락으로 싸갈 계란을 삶는 것까지 알람시계의 울림에 맞춰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인생을 산다. 유일한 일탈이라고는 출근 전에 자위하는 것뿐. (그래도 지각은 절대 안 한다. 아슬아슬하게 출근 시간에 세이프하긴 하지만.) 친구이자 가족은 옆집에 사는 게이 노인 화가 자일스와 동료 청소부인 흑인 여성 젤다 두 사람뿐이다.
연구소에 남미에서 데려왔다는 괴이한 수중생명체가 등장하면서 일라이자의 쳇바퀴에 균열이 생긴다. 계란을 나눠먹고 음악을 듣고 수화를 가르쳐주면서, 일라이자와 '그'는 친구가 된다. 물에서도, 물밖에서도 호흡할 수 있는 신기한 몸을 가진 '그'를 해부하려는 계획을 엿듣게 되면서 일라이자는 친구들과 함께 '그'를 구해내려는 시도를 시작한다.
(스포일러인지도 몰라요)
대결구도는 이렇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보안책임자인 백인 마초 미국 남성 스트릭랜드+ 연구소 전체 vs. 장애가 있는 여성 청소부 일라이자+ 흑인 여성 청소부 젤다+ 게이 노인 비정규직 화가 자일스+ 러시아 이민자 출신 스파이 과학자 호프스테틀러 박사+ 남미에서 온 수중 괴생명체.
잘린 손가락 접합수술이 잘못돼 썩어가는 손가락을 붙이고 다니면서도(잡아 뜯어내면서도) 멀쩡한 척하는 참전용사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존재들은 힘없고 돈없고 무시당하고 배제당하는 게 당연한 2등 시민들이다. '그'를 구해내는 것은 "적어도 10명은 넘을 엘리트 특수부대"도 계급과 직함이 있는 누군가도 아니었다.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싸웠던 것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특수부대 요원보다, 공산당보다 더 무서운 법..) 일라이자 자체를 사랑하는 '그', '그'를 사랑하는 일라이자, 일라이자를 사랑하는 자일스와 젤다, 생명을 사랑하는 호프스테틀러 박사. 사랑하기 때문에 상상조차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총탄에 맞서면서 서로를 구원하고자 한다.
화면은 시종 청록색 필터를 끼운 것처럼 영롱한 푸른색이다. 심지어 대사로도 "초록이 아니라 청록색(Teal)"이 등장한다. 물의 색이자, '그'의 색인 청록색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공기처럼 보인다. 일라이자와 젤다가 입고 있는 청소부 유니폼도, 화장실의 타일도, 일라이자 집의 식탁도, 가구도, 잠옷도, '그'의 비늘 색깔과 생존을 위해 물에 타줘야 하는 가루(?)도 청록색이다. 심지어 스트릭랜드의 욕망을 상징하는 듯한 새 캐딜락의 색도 청록색이다. 그토록 무시해 온 청소원의 옷, 괴생명체의 몸, 화장실 바닥의 타일에서 늘상 보아왔던 색깔인데도, 캐딜락 전시장 영업사원의 '초록이 아니라 청록'이고 당신 같은 사람이 가질 법한 세련된 색이라는 식의 영업멘트를 듣는 순간, 청록색은 스트릭랜드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스트릭랜드는 (남 얘기 듣고) 청록색 캐딜락을 욕망하고, 거금을 들여 사들이는데, 싸구려 빨래수거 차량(역시 청록색)에 부딪혀 다 부서진다. 그동안 사랑에 빠진 일라이자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물처럼 주변을 휘감는 청록의 느낌에 빠져 피식피식 웃고 다닌다.
청록빛 사랑으로 무장한 일라이자는 전사가 되어 '그'를 구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의 빛을 뿜으면서 일라이자를 구원하고 진짜 청록의 세계, 물로 돌아간다. 그 이후는 자일스말처럼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둘이 헤어졌을 수도 있고, 일라이자가 물에서 숨 못 쉬어서 죽었을 수도 있고, 성격 안 맞아서 불행해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물 속에서 함께 했던 그 순간은 영원히 빛나는 가치다. '그'의 몸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음울한 색감 가운데 빨강, 청록 같은 강렬한 색깔이 눈에 띄는 영상은 <펀치 드렁크 러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보니 두 영화 다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 하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대단한지. <펀치 드렁크 러브>의 배리가 했던 말처럼.
"난 사랑에 빠졌어. 넌 내가 지금 얼마나 강한지 모를 거다.(I have a love in my life. It makes me stronger than anything you can imag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