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30]
남자에게 차는 꽤 특별한 공간이다.
차 안에서는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나만의 공간'이다.
내 마음대로 꾸며도 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노래를 불러도 된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 못하는 답답함을
차 안에서 만큼은 소리 높여 고래고래 토해내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날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나를 위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점점 줄어가는 세상에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기도 하는 기특한 존재.
어쩌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이자 공간이기에
남자에게 차는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차 안에서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
그만큼 차는 남자에게 자유와 위로를 선물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나만의 공간'이었던 차에 사랑하는 사람이 탄다.
늘 비어있거나, 잡동사니가 쌓여있던 조수석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게 되면서 차의 의미는 바뀐다.
나만의 공간에서 '우리'의 공간으로.
그녀를 태우러 갔다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공간은
설렘과 떨림이 가득하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서
우리의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꽤 많은 커플들이 첫 키스 장소로 '차 안'을 꼽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도 그랬다.
그녀와 함께 웃고 웃었던 공간.
많은 추억을 쌓게 한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이 컸다.
'빅토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단순한 차가 아니라 생활과 사랑을 함께 해주는 '존재'로 생각했다.
아내도 빅토르를 아꼈다.
빅토르를 운전하면 항상 옆에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가 불편하지 않게 온도, 속도, 운전 패턴까지 신경 썼다.
아내는 언제나 자랑스럽게 인정해줬다.
"오빠는 굿 드라이버" 라면서 말이다.
윤슬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장 큰 고민은 '카시트'였다.
많은 아빠들이 고민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이었다가 '우리의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의 카시트가 존재하게 된다.
심지어 아이 없이 혼자 타고 다니는 순간에도 카시트가 있다.
아빠에게는 조금 충격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카시트를 설치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카시트는 꼭 필요하지만
아빠에게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아빠의 고민은 카시트의 존재 유무가 아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에
그나마 '덜 어색할 만한' 카시트의 색과 디자인이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색깔톤이라도 좀 맞았으면'
아빠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윤슬이가 태어났다.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되고 나서 첫 번째 운전을 잊을 수가 없다.
병원에서 조리원까지
아이와 아내, 장모님을 모시고 가는 길은 너무 떨렸다.
매일 하던 운전이었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뭔지 모를 묵직함이 밀려왔다.
'가장의 무게
아빠로서의 책임감'
거창한 수식어는 필요 없었다.
그저 행복했다.
동시에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정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매일 운전하던 '내 차'의 의미가 또 한 번 바뀌는 순간이었다.
매일 내 옆에서 함께 해주었던 아내는 이제 옆에 없다.
언제나 뒷좌석에서 윤슬이와 함께 한다.
외롭다는 생각도 잠시.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로 향할까만 생각한다.
(내 차 내부의 분위기와 '덜 어색하다고 믿고' 고르고 또 고른) 카시트에는
윤슬이가 (늘 다른 컨디션으로) 앉아 있고
아내는 윤슬이의 컨디션을 살피면서 돌본다.
운전은 목적지도 분명하고
어디로 가면 되는지를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에는 그런 것도 없으니 훨씬 힘들겠지.
걱정되고 미안하기도 하다.
앞에서 혼자 운전하면 늘 궁금하다.
내가 없는, 뒷좌석의 느낌이.
운전을 하면서도 아내와 윤슬이가 함께하는 뒷좌석에 신경이 쓰인다.
혹시나 불편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힘들지는 않을까?
그래도 다행히 두 사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하하호호 앞만 보며 운전하는 내 등 뒤로 행복한 소리가 전해진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없는 뒷좌석이지만
나로 인해 편안함이 유지되는 것 같아 기쁘다.
아빠가 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평온한 순간이다.
'나'를 위해 하던 운전이
'우리'를 위해 가던 그 길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바뀌어 간다.
이런 순간의 느낌이 행복이라면,
'오빠' 대신 '아빠'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
난 기꺼이 '아빠의 삶'을 선택하겠다.
혼자서도 잘 살았지만
둘이라 즐거웠고
셋이라 더 행복할 수 있기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선택하겠다.
"아빠는 오늘도, 굿 드라이버"
덧)
참고로 차량 뒤에 '아이가 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한다.
만약 사고가 났을 경우 차량 안에 아이가 있음은 구조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조만간 나도 나의 빅토르에게 새로운 스티커를 선물해줄 예정이다.
'날 이해해줘 빅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