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 휴직'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37]

by 스타킴 starkim

아는 동생이 SNS에 글을 썼다. '아빠 육아 휴직의 현실'에 대한 얘기였다. 아빠의 육아 휴직 얘기를 꺼냈을 때, 얼마 전까지 '미리 말해줘서 고맙다'라던 회사 팀장으로부터 막상 때가 되니 '책임감, 주인의식 없이 권리만 쏙 빼먹는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아빠의 육아 휴직, 정말 쉽지 않다. 그나마 육아 휴직에 관대한 우리 회사지만, 나 역시 육아 휴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깔린 ‘아빠의 육아 휴직’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아빠의 육아 휴직은 용기가 필요하다. '왜' 육아 휴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세상은 육아 휴직하는 아빠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나와는 다르다‘라는 시선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는 먼저 해야 한다'라며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선배들도 많았지만, 많은 선배들의 질문은 '왜? 남자가?'였다. 본인들이 경험해본 적 없기 때문에 지지도 동의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짜 육아 휴직 하는 것 맞지?"
수없이 많은 확인의 절차가 필요했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대답했어야 했다. 본인들은 한 번의 질문이지만, 반복되면 당사자는 너무 힘들다. 남자 육아 휴직이 '특이한' 것이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다. 아니면 본인들이 하지 못한 선택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고.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기 때문에 먼저 이해할 수도, 어떤 조언을 할 수도 없다. KBS 남자 아나운서 중에서 육아 휴직은 내가 처음이었다.
‘다르다'까지는 괜찮다. ’틀렸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이런 시각이 문제다. ‘애 보다 보면 회사 가고 싶을 거다' 라면서 육아의 힘듦과 자신은 육아에 대해 ’잘 모른다‘를 '능력'으로 어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애 기저귀 한번 갈아본 적 없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가정적이지 않음'이 사회에서 '능력 있음'과 같다는 식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뭐, 이 정도도 괜찮은 편이다.
"처가가 좀 사나 봐?"
"집에 여유가 좀 있나 봐?"
심지어, ‘승진하기 싫은가 봐?'라며 마치 육아 휴직이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가 육아 휴직을 해서 승진에 영향을 주는 회사라 믿고 싶지도 않지만, 만약 그런 회사라면 내 가치관과는 너무 다르므로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가족을 위한 선택 때문에 하지 못 할 승진이라면 안 해도 상관없다. 승진이라는 것이 결국 가족을 위한 것 아닌가. 승진을 위해 가족을 희생할 수는 없다.‘

당연한 권리인 육아 휴직을 위해 이런 의지를 다지는 것이 우스웠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뭐, 복직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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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르다‘라는 시선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세상은 육아 휴직하는 아빠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육아 휴직에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다. ‘남들 시선'에 대한 용기도 필요하다. 월요일 오후 분리수거를 하러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저 남자는 왜 매주 이 시간에 나올까?'
‘뭐 하는 사람일까?'
엄마들의 미묘한 시선이 있다. 그 시선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직까지 육아 휴직하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다는 얘기다. 그래서 육아하는 아빠로서 가끔 서러울 때도 있다. 육아 정보를 검색하면 엄마들의 커뮤니티들이 나온다. 아빠들의 커뮤니티는 거의 없다. 녹색 어머니회는 있지만, 녹색 아버지회는 없다. 두 번째 육아 휴직 혜택의 이름은 아빠의 달이지만 첫 번째 육아 휴직이었던 나는 '아빠의 달'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주부'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주부인가?' 고민하게 된다. 육아하는 아빠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라테파파, 프렌디, 육아대디 등 육아하는 아빠를 칭하는 단어가 있지만 사실 어색하다. '육아하는 아빠'가 어색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육아와 관련된 아빠와 엄마에 대한 사회 인식 불균형을 피부로 느낀다. 육아하는 아빠에게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육아하는 아빠가 더 많아지면 좀 나아지려나?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육아 휴직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와 믿음이 필요하다.
‘나도 육아 휴직 하면서 좀 쉬고 싶다.'
’요즘 유행이라던데 나도 육아 휴직이나 한 번 신청해볼까?'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는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거나 육아 휴직을 하면서도 힘들고 자괴감이 들 수 있다. 육아 휴직 후 회사로 돌아가서도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 수 있다. (실제 육아 휴직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아빠, 창업하는 아빠도 많이 있다. 휴직 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생각보다 세상은 육아 휴직하는 아빠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직까지 우리는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육아 휴직하는 아빠들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거창한 '용기' 따위 없어도 아빠들이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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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세상은 육아 휴직하는 아빠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직까지 우리는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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