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원래...' 그런 게 어딨어!

[KBS 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41]

by 스타킴 starkim

“콘서트 필을 진행하고 싶어서요.”
KBS 본사에서 연수를 받고 발령 지역을 선택할 때 선배들은 물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광주로 발령을 지원한 이유. 바로 ‘콘서트 필’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방송과 음악, 공연, 아나운서라는 직업. 모든 것이 만족되는 일이었다. KBS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역의 방송들을 찾아봤다. 어차피 가야 하는 지역이라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광주에 ‘콘서트 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유희열의 스케치북’보다도 오랜 역사를 간직한 프로그램이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광주를 선택했다.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니?”
광주에서 받은 첫 질문이었다.
“저는 ‘콘서트 필’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한참 말이 없던 한 선배는 정말 진지하게 얘기했다.
“남자는 원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거야.”

‘콘서트 필’을 진행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는 원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편견과 싸워야만 했다. 많이 힘들었다. 쉽게 허락되지 않는 자리를 위해 내 프로그램이 아니었어도 매번 녹화장을 찾았다.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매번 녹화 과정을 살펴봤고, 무대 뒤의 스태프를 챙기며 많은 얘기를 들었다. 오히려 더 넓은 시각에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지켜봤고, 녹화 중간 지연되는 시간에는 무대에 올라가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얘기도 하고, 심지어 노래도 불렀다. 어차피 무대와 객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송을 위해 기여하고 싶었다. 자료실에서 지난 방송들을 전부 찾아봤고, PD 선배에게 코너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내가 진행하지 않아도 콘서트 필은 정말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콘서트 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콘서트 필 MC는 한별이로 가겠습니다.”
‘남자는 원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편견에 대한 담당 PD 선배의 의지였다. 반대도 많았지만 선배의 의지는 확고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열정을 좋게 봤다고도 말했다. ‘남자’ 그것도 ‘아나운서’로는 처음으로 ‘콘서트 필’의 진행자가 되었다. 최초의 ‘남자 아나운서’ 진행자이자, 최장수 진행자. 지역에서는 만들기 힘든 프로그램이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14년의 시간을 버텨왔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남자 아나운서가 절반인 7년을 책임졌다. 감사하게도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평가는 PD 연합회에서 주는 ‘TV 진행자 상’으로 돌아왔다. 이것도 역시 ‘최초의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콘서트 필과 관련된 ‘최초’라는 모든 것들은 ‘남자는 원래’라는 편견들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남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어서 ‘최초’가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자는 왜 안 돼?’라는 의문을 품은 덕분에 나는 혜택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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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원래...’
오랜만에 이 얘기를 다시 듣게 된 건 육아 휴직에 대한 결심을 얘기할 때였다. 몇몇 선배들의 얘기 속에서 ‘남자는 원래’를 다시 만나게 됐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남자는 원래’라는 편견이 가득했다. 사실 많이 놀랐다. 선배들은 그것이 편견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게 안타까웠다. 본인들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어떠한 조언도 해줄 수 없는 선배들의 모습이 오히려 난 안타까웠다. 많이 슬펐다.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지. 잘했어.”
물론 대부분의 선배들은 응원을 해줬다. 자신들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해 지지를 보내줬다. 선배들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남자는 원래’는 없다는 사실을. 그저 ‘가보지 못 한’ 길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편견마저도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남들처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니까.

그렇다. 처음부터 '남자는 원래'란 없었다. 윤슬이가 태어나고 아내와 모자 동실을 쓰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함께 배웠다.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에게 설탕물을 주고,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도 모두 함께였다. 처음부터 아빠, 엄마의 역할을 나누지 않았다. 나눌 필요도 없었다. 아빠가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유 수유 시간에는, 아빠는 다른 집안일을 하면 된다. 시간을 함께 쓰는 것이다. 늘 함께 한다. 처음부터 같이. 역할을 나누지 않고.
양쪽을 경험해봐야 다른 한쪽 면도 이해할 수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자칫 내가 아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육아 휴직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남자는 원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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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남자는 왜 안 돼?’라는 의문을 품은 덕분에
나는 혜택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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