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42]
농담처럼 '퇴근 후 다시 출근한다'라고 표현한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엄마들의 삶이다.
회사에서 일과 싸우며 지칠 대로 지쳤지만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엄마들의 모습.
특히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라면 더 힘들다.
집에는 엄마의 모유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이미 회사에서 동료들의 눈치를 봐가며
몇 번의 유축을 거친 후였지만
아이에게 모유를 줘야 하는 시간이 됐다.
정확히 알 수 있다.
몸에 신호가 오기 때문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아내에게
적어도 '다시 출근'한다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편해야 아이도 편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모유수유를 제외한
최대한 모든 것들을 하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청소와 정리를 좋아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정리되어 있는' 그 느낌이 좋았다.
안정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안정감.
문제가 있을 때 언제든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 자신감이 넘친다.
방송도 마찬가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서는 여유가 넘친다.
남들은 이것을 순발력, 혹은 애드리브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미 나름대로의 '매뉴얼'이 존재하는 상황이어서 가능한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보고, 듣고, 생각했던 돌발상황.
완벽하게 새로운 애드리브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는 청소와 정리가 그랬다.
통제할 수 있는 안정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니 도전도 쉽다.
밑져야 본전.
과감하다.
안 되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이미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
일종의 안전장치.
혼자 살 때의 습관이었다.
처음 한번 질서를 마련해준다.
쉽게 표현해서 그 물건이 원래 있는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어떤 물건도 그곳에 가져다 놓으면 그게 바로 정리다.
처음에 이 '위치 설정'의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지만
이 과정만 지나면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평소에 청소를 덜 할 수도 있다.
정리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질서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 것은 마치 맥북을 수시로 타임머신 백업하는 것과도 같다.
돌아가는 방법과 시기만 파악하고 있으면 된다.
원하는 때로 돌아갈 수 있다.
과정을 내가 진행했으니 정리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내가 정리를 좋아하는 이유다.
정리, 수집, 음반, 음악, 외장 하드, 방송 자료, 공부 내용 등.
정리를 하면 찾기도 쉽다.
추억도 정리가 필요하다.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정리한다.
그걸 했었다를 넘어 바로 그 시기로 가는 것이 정리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정리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이다.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면
그 공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원래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이런 향이 있구나.
정리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내 공간이 더 소중해진다.
나만의 공간을 넘어 이제는 우리의 공간,
가족의 공간이기에 더 소중하게 파악한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윤슬이의 행동 패턴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서 공간을 재구성한다.
어떤 물건이 들어올 공간도 상상한다.
자리와 질서를 부여하면서
우리 가족의 성향이나 습관도 파악한다.
아내의 책 보는 성향에 맞게 아내의 책들은 넓은 공간에 배치한다.
아내는 여러 책을 주변에 놔두고
언제든지 볼 수 있게 세팅(?)을 해둔다.
일종의 관심이다.
공간에 대한 관심.
아내에 대한 관심.
그래야 비로소 아내도 내가 정리한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난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면서 아내를 기다린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이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덧.
"회사에서 돌아왔는데 집이 엉망이면 더 힘 빠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친구에게 아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아내가 집 정리를 못 할 때가 있다.
육아를 해보니 알겠다.
육아를 하면서 완벽한 정리는 불가능하다.
정리하고 돌아보면 또 어지러워진 상태다.
육아만으로도 아내는 그 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집안일이라는 게 아무리 잘 해야 본전이다.
가장 잘 정리된 상태가 원래 그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티도 안 난다.
가장 인정받기 어려운 분야가 집안일이다.
그때에는 또 다른 룰이 중요하다.
아무 말없이 원래 자리로 내가 돌려놓는 것.
바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티 안 나게.
그렇게 안정감을 찾아간다.
부부 사이의, 육아와 집안일의 안정감은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는 참 호흡이 잘 맞는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아내에게
적어도 '다시 출근' 한다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았다.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