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45]
"형,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형은 들떠 있었다.
아이와 아내가 함께 떠나는 여행.
직장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형에게는 아쉬움보다 설렘이 느껴졌다.
1주일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진짜' 휴가일지도 몰라"
형에게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표정이었다.
며칠이 지나 형의 '진짜' 휴가 전 날 형에게 물었다.
그때는 나 역시 결혼 전이었기 때문에 형의 결정이 궁금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쉽게 허락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시간이었지만
유부남은 그토록 간절하고 절실하는 그 시간.
형의 결정은 의외였다.
"내일 6시에 칼 퇴근해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모습으로 소파에서 야구 볼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맥주도 먹으면서."
"겨우?"
의외였다.
뭔가 거창한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소박해서 놀랐다.
결혼을 해보니,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엄마, 아빠들이 힘든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나 소박하고 당연한 그것.
그걸 할 수 없어서였다.
거창한 희생은 아니지만,
너무 소박해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조차' 못하는 삶이 힘든 것이다.
남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는 일들.
때가 되면 미용실을 가거나,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하는 일들.
아이를 키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
당연한 것이 '특별'해지는 순간.
육아가 힘들어진다.
작은 희생이 쌓이다 보면 박탈감이 커진다.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아이 키우다 보면 다 똑같지. 나 때도 다 그랬어. 유난 떨지 마. 너만 아이 키우는 것 아냐."
지나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
작은 것에 유난 떠는 것처럼 쉽게 말하는 것에 상처받는다.
당연한 것이 '특별'해지는 순간.
육아가 힘들어진다.
작은 희생이 쌓이다 보면 박탈감이 커진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아이를 키우면 작은 것에도 예민해져야 한다.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크게 반응하는 게 부모다.
아이에게 온종일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라진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날짜 감각이 무뎌진다.
언제나 선택의 1순위는 아이.
자기 목도 못 가누는,
지금 어떤 기분인지 논리 정연하게 말할 수 없는 아이를 보며
'나'를 우선순위에 놓기란 쉽지 않다.
포기하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언제 다시 할 수 있다는 기약도 없다.
비슷한 하루가 반복된다.
집 밖의 세상은 뭔가 시끌벅적 행복한 것 같은데,
나만 동떨어진 느낌.
마치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것 같은 그 느낌.
그저 나만을 바라보는 게 전부인 아이와 단 둘이 있다 보면,
실수로 아이가 하는 '대답' 비슷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동하게 된다
대화가 그립다. 반응이 그립다.
적어도 내 얘기에 고개 끄덕이는 존재만 있어도 살겠다.
남들도 힘든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내 힘듦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유난 떨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오빠가 엄마였으면 산후 우울증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
워낙 활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내 성격을 바라보는 아내의 의견이었다.
인정한다.
아내가 심리 전문가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내는 정확히 보고 있었다.
육아 휴직을 하고, 아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의 시간이 쉬운 건 아니었다.
집이란 공간이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그 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은 힘들었다.
세상이 궁금했다.
아이 때문에 TV를 켜둘 수는 없으니 팟캐스트나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라디오는 하도 많이 들어서 로고송과 광고 음악까지 외울 정도.
그렇게라도 세상 얘기를 듣고 싶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나가고 싶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우울감이 뭐 특별한 감정인가?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으면 생기는 감정이지.
포기해야 하는 것을 내가 인정할 수 없으면
그 괴리감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우울감이지.
그나마 나는 괜찮은 편이었다.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오는 아내가 있었으니.
언제 아내가 돌아올지 적어도 예측은 가능했다.
아내는 회사가 끝나면 집으로 바로 와야 했다.
아이의 모유 수유를 위해서.
퇴근 시간이 되면 아내의 몸에서는 신호가 왔다.
'집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라고.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은 밖에 나가도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몸이 반응한다.
주기적으로 모유를 유축해야 했다.
유축하지 않으면 가슴이 아팠다.
늘 유축기를 가지고 다녔다.
밖에 있어도 아이와 떨어질 수 없는 엄마들.
그나마 아빠는 나은 편이었다.
아이의 존재는 부담이다.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부담인 건 맞다.
기꺼이 그 부담을 감내해야 육아도 가능하다.
혼자는 불가능하다.
육아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는 배우자다.
함께 하면서 적절히 서로의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숨 좀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서로, 숨 좀 쉬면서,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가장 위안이 될 수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집 안, 침대나 책상, 오디오 등 가장 사랑하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고
집 밖의 '나만의 아지트'도 좋고.
그 공간에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잠깐이라도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 아빠'가 아닌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서로, 숨 좀 쉬면서,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 아빠'가 아닌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혹시 지금 이 순간이 아이 낳기 전, 결혼하기 전이라면 여보는 뭘 하고 싶어?"
아내에게 물었다.
놀란 눈치다.
평소에 생각해둔 것은 많은데,
막상 하나만 고르라니 고민되는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지 한참을 웃으며 생각하던 아내가 말했다.
"심야 영화. 혼자. 아니면 그냥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책 읽기."
거창한 행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예전에 '나'로서 하던 소박한 것들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육아하는 엄마나 아빠가 지금 당장 원하는 건 그것이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난 떨더라도 일단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힘들면 힘들다
우울하면 우울하다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보장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언제든지 아내가 원하면 시간을 줄 생각이다.
그러려고 나도 함께 육아하고 있는 거니까.
내가 힘들 때에는 아내에게 부탁하고,
또 아내가 힘들 때에는 내가 함께하고.
그렇게 호흡을 맞춰가며 '숨 좀 쉬면서'
행복하게 육아하기 위해서
지금 나도 이렇게 육아 휴직을 하는 거니까.
NBA 최고의 농구스타 스테판 커리.
어느 날 귀여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을 길렀다.
기자가 수염 기른 이유를 물었다.
아내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커리는 딱 한마디를 했다.
"Happy Wife, Happy Life!"
난 내 생각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Happy Wife, Happy Life!"
난 내 생각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