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46]
나에게는 형이나 누나가 없었다. 태어나 보니 첫째였다. 친가, 외가를 아무리 살펴봐도 나에게는 형, 누나가 없었다. 늘 처음이었다.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기대도 컸다. 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늘 잘해야 했다. 넘어져도 울 수가 없었다. 동생들이 보고 있으니까. 동생들을 달래야 하는데 내가 울고 있으면 안 되니까. 스스로 괜찮아지는 법을 익혔다. 진짜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감추는 법을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3~4살 아이일 때에도, 1~2살 동생들을 챙기는 형, 오빠였다. 난 어리광 부릴 나이였는데 말이다. 나는 그때 절대 괜찮지 않았는데 말이다.
“용이 형이 고대에 합격했대.”
나와 띠동갑인, 먼 친척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형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먼 관계였다. 나이 차이도 많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형은 대학생이었다. 가끔 놀러 와서 동생이라고 많이 챙겨주는 형이 참 좋았다. 물론 쑥스러워서 표현은 못 했다. 형이 군대에 갔을 때 위문편지를 자주 썼다. 그때는 얼굴도 모르는 ‘국군 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던 시절이었다. 형에 대한 애틋함보다는, 얼굴과 이름을 아는 국군 장병 아저씨에 보내는 편지였다. 나에게 형은, 형이라기보다는 어른, 선배였다. 먼저 연락하기 참 어려운. 그러면서 늘 닮고 싶은.
동생들을 달래야 하는데 내가 울고 있으면 안 되니까.
스스로 괜찮아지는 법을 익혔다.
나는 그때 절대 괜찮지 않았는데 말이다.
형을 다시 만난 건 중학교 입학을 얼마 남기지 않은 겨울이었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이나 과외를 받아본 적 없던 나였다. 어머니는 형에게 과외를 부탁했다. 성적이 비슷한 친구들과 팀을 짰다. 1주일에 두 번, 난 형을 만났다. 형을 만나기 전 나는 그저 '시험을 잘 보는 아이'였다. 시험에서 답은 잘 맞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고민한 적 별로 없는 아이. 눈치가 빠른 편이어서 답을 맞히는 건 어렵지 않았고, 아무도 거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시험 결과는 늘 좋았으니까. 그땐 다 그랬으니까. '뭘 배웠나?' 보다 '몇 개 틀렸나'가 더 중요했으니까. 초등학교 때에는 통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답은 잘 맞히고 있지만 그래서 성적은 유지하고 있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태. 전형적인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상태. 벌써 지쳐가고 있었다. 형은 당장 문제풀이보다 '왜 공부를 하고 싶은가?'를 물었다. 시험 답을 맞히는 것보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 첫 번째 시험이었다.
20년이 흘러 형을 다시 찾았다. 어쩌면 학창시절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시기. 학창 시절보다 미래에 대해 더 고민하는 시기이기에. 나에겐 선생님이 필요했다. 더 이상 학교라는 울타리는 없었다. 다짜고짜 형을 찾아갔다. 형 덕분에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됐고 공부의 의미를 찾게 됐으며 하고 싶은 꿈을 찾아 열심히 달렸으니. 30대가 되어 다시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에 다시 한 번 답을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공부를 접하게 해준 '은인'에게 첫 번째 선생이었으니 AS까지 책임지라는 뻔뻔한 요구. 형은 20년 전처럼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줬다. 나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나중에 너도 후배들한테 이렇게 하면 돼'
선배구나. 진짜 선배는 이런 거구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등을 보여주면서 앞서 걸어주는 사람. 후배의 흔들리는 눈빛까지도 배려하는 사람. 고마웠다. 존재만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는 것으로 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을 만나 알게 됐다. 진짜 어른이구나. 부모가 되었지만 난 선배가, 진짜 어른이 필요했다. 형은 정답을 주지 않았다. 자신의 오답과 실수, 두려움을 말해줬다. 묵묵하게. 너도 그럴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와 함께. 자신의 두려움을 말할 수 있는 것. 어른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어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은 형이었다. 윤슬이와 아내에 대해 물었다. 더 알고 싶어 했고, 보고 싶어 했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얽혀있는 가족. 그래. 나에게도 형이 있구나. 억지로 괜찮다고 억지로 끙끙대지 않아도 되는구나. 비로소 안심이 됐다. 다음 주에는 가족을 몽땅 데리고 형을 다시 찾을 생각이다. 해답을 내놓으라고 더 뻔뻔하게 요구할 생각이다. 내 몫을 넘어, 우리 가족의 몫까지. 물론 형은 늘 그렇듯 사람 좋은 웃음으로 묵묵히 들어주겠지. 원래 답이 없는 인생의 해답을 요구하며 남의 회사까지 쳐들어가는(?) 뻔뻔한 나도 나지만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형은 더 대단하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나중에 너도 후배들한테 이렇게 하면 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등을 보여주면서 앞서 걸어주는 사람.
고마웠다. 존재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