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휴직 일기 #56]
KBS 36기 김한별 아나운서 인터뷰
교통사고로 가족의 의미 깨닫고 휴직
복직 후 새벽 앵커 맡으며 가사 분담
“아내와 환상의 복식조 되려 노력한다”
요즈음 많은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꿈꾼다. 단순히 돈 좀 더 벌어서 행복한 아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위 워라밸(일 가정 균형)이 중요해진 것도 직장인들에게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풍토 때문이기도 하다.
KBS 김한별 아나운서는 남성 방송인들 사이에서는 ‘육아 트렌드 리더’다. 그는 딸 윤슬이를 얻은 뒤 육아휴직을 하면서 책 ‘라테파파’를 펴내기도 했다. 육아와 아빠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육아휴직은 언제, 어떤 이유로 내신 것인가요?
/김한별 아나운서 블로그 캡처
“아이를 만나기 두 달 전, 작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주말부부로 지내던 시절,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주말을 앞두고 마음이 급했던 것이죠. 당시 아내는 만삭이었고요. 회사 앞에서 급하게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CT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CT 판독 결과, 의사가 뇌 안에 무언가가 보인다고 하더군요. 불안했습니다. 당장 입원을 해서 뇌 MRI도 찍었습니다. 평생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었던 저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결과를 기다리며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오늘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은 ‘가족’이었습니다. 아내는 물론, 무엇보다 두 달 후면 만나게 될 딸이 보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기준’이 달라지는 순간이었죠. 다행히 뇌 속의 무언가는 혈관이 뭉쳐있는 ‘해면성 혈관종’이라는 낯선 녀석이었습니다. 그때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육아휴직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 육아휴직 당시 상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법과 사규에서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힘들었던 건 끊임없는 확인이었습니다. ‘진짜 하는 거지?’ ‘진짜 하는 거 맞지?’ 끊임없는 확인과 설득이 이어졌습니다.
KBS 남자 아나운서 중 육아휴직을 쓴 건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습니다. 그분들도 낯설었을 테니까요. 특히 그때 저는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했고, 한국PD연합회에서 주는 ‘TV 진행자 상’을 받을 정도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때였거든요. 많이 의아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가 아니면 아이의 성장을 옆에서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태어난 순간, 그리고 모든 부모가 가장 힘들어하는 아이가 100일이 되기 전, 그때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부모의 처음. 그 순간부터, 아빠 역할, 엄마 역할 나누지 않고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육아휴직 신청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인수인계 등 잔여 업무 때문에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의지가 확고하니 상사들도 반대는 안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저도 조금은 배짱을 부린 것 같네요.”
- 육아휴직 기간 동안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에피소드는 정말 많습니다. 육아휴직을 안 했다면 정말 몰랐겠지만 하루하루가 새롭고 신기하더군요. 어제 못하던 행동을 오늘 아이가 한다는 것, 어제 조금 힘들어하던 아이가 오늘 시원하게 변을 본다는 것, 어제 짓지 못하던 표정을 오늘 아이가 지어준다는 것 등이 그래요. 제게 육아휴직은 작은 것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의 연속이었습니다. 늘 화려하거나 특별한 곳에 행복이 있다고 믿어오던 저였는데, 육아휴직을 통해 행복을 발견하는 범위와 포인트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꼭 해봐야 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하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김한별 아나운서 블로그 캡처
아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가 느끼는 작은 감정들을 회사 다닐 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언제 들어와?’라는 질문에서 외로움·힘듦·서러움·걱정 등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내가 출근할 때 ‘언제 들어와?’를 묻는 제 감정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더 이해하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감정을 대입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상황을 알고 배려하고 공감하게 되더군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운 육아휴직이었습니다.”
- 육아휴직 동안 아이와 함께할 프로그램 짜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하루 일과가 어땠나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육아의 고수가 아닙니다. 저도 아빠는 처음이거든요.(웃음) 어떤 프로그램을 짜지 않습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되고요. 대신 아이를 많이 관찰하고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잘 살펴보면 아이는 반드시 자신의 원하는 것들이 있더군요.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를 뿐, 분명히 자신의 원하는 것이 있죠. 그런 아이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되도록 그걸 해주려고 노력했죠.
아이가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면 ‘주먹 쥐고’ 노래를 불려주면서 율동을 해야 합니다. 아이의 표정이 결연할수록 많이 불러야 합니다. 노래가 끝날 때쯤 아이가 첫 동작을 준비한다면 바로 이어서 불러야 합니다. 아이의 율동에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놀이가 떠오른 것이더군요. 뭔지를 파악하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봅니다. 아이의 표정이 흡족하면 그 아이템으로 놀아줍니다.
이런 과정만 반복돼도 하루가 금방이더군요, 매일 반복하는 먹고, 싸고, 씻고, 자는 과정만 반복해도 시간이 금방이니까요. 순간순간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예비동작을 파악하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 아이는 이유식을 먹었나요? 하루 세 끼를 어떻게 차려주었는지요?
“1년의 아내의 모유 수유 덕을 많이 봤습니다. 모유 수유는 정말 위대한 일이더군요, 아빠는 절대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먹인다’는 것보다 ‘교감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외출할 때에도 짐이 훨씬 줄어들고, 아이에게도 모유가 가장 좋지요. 저는 모유 수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조금 자란 뒤에는 이유식을 병행했습니다. 지금 저희 아기는 이유식과 함께 밥을 같이 먹습니다. 물론 아이가 먹는 것은 염분을 거의 없게 만들고, 부드럽고 소화하기 좋은 음식들로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물론 아이가 조금 힘들어하면 옆에서 도와줍니다. 하지만 주로 기다려주는 편입니다. 답답하다고 처음부터 도와주기보다는, 조금 답답해도 스스로 숟가락을 뜰 때까지 기다리는 편입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먹을 밥을 먹다 보니 식단도 조금은 아이에게 맞춰집니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되도록 줄이고, 아이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준비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닭고기와 찹쌀을 활용한 닭죽은 최고의 식단 중 하나입니다. 아이는 염분이 적도 영양 넘치는 고기와 죽을 부담 없이, 그리고 조금은 쉽게 먹을 수 있고, 저와 제 아내도 소금을 조금 넣어가며 함께 즐길 수 있으니까요.”
- 지금 딸 윤슬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있나요? 요즘 일상은 어떤지?
“제가 다시 회사를 다니면서, 아내도 자연스럽게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도 가끔 어린이집에 갑니다. 복직을 하면서 제가 생각한 첫 번째 근무 조건 역시 ‘가족’이었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나도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었거든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저는 복직하면서 새벽 뉴스 앵커를 자원했습니다. 남들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근무지만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모두가 자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지만 퇴근이 빠르거든요. 제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아내는 상담 일정을 잡습니다. 아내가 일을 할 때 제가 퇴근해서 아이를 돌보죠.
아내와 저의 업무시간이 겹칠 때 어린이집을 활용합니다. 제가 낮에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오고, 아내가 일이 없을 때는 엄마와 함께 하고요. 그렇게 서로 조율하면서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먹고, 씻고, 청소하고 아이가 자면 저는 글을 쓰고, 영상도 만듭니다. 일도, 앞으로의 준비나 공부도 소홀할 수 없으니까요. 새벽 근무를 위해 잠들면 아내는 거실로 나와 자신의 일을 정리합니다. 아내와 호흡을 잘 맞춰가며 함께 하고 있어요.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준비와 공부도. 함께 하는 ‘환상의 복식조’가 되려고 서로 많이 노력합니다.”
- 라테파파라는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한별 아나운서 블로그 캡처
“일상의 소중한 순간에 대한 감정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문득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그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이었습니다.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산책할 때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은 충만한 행복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발견하는 일상 속 크고 작은 행복들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고, 글도 썼습니다.
개인적인 글이었는데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게 되었고, 당시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여서 글은 ‘글’에 특화된 플랫폼에 올려보자는 생각에 브런치와 네이버 포스트, 퍼블리 등을 활용해서 글을 썼습니다. 감사하게도 브런치에서 작가상을 받았고, 출판사의 제안에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감사했죠.
저는 사실 이 순간의 감정을 먼 훗날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글을 썼던 거거든요. 지금 아이는 너무 어려서 기억을 못 할 테니. 그런데 지금은 그 기회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가 더 많은 얘기를 듣고 배우기도 하고요.
얼마 전 당인리 책 발전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북 토크를 진행했는데 정말 많은 아빠들이 오셔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책 중에 ‘엄마들을 위한 공간을 많은데, 아빠들이 육아 고민을 얘기할 공간은 적다’라는 부분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어요. 그래서 제 북 토크에 직접 오신 분들도 많았고요. 제가 요즘 책 콘텐츠를 활용해서 영상을 만들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우리 아빠들이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육아는 전쟁이자 또 현실이라고들 많이 합니다. 육아 대디를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육아에는, 결혼 생활에는 정답이 없더군요.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명 다 다른 얘기를 할 겁니다. 누군가에게 정답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답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가족의 얘기를 듣고 그중에 나와 어울리는 부분을 참고하는 거죠. 그래도 나만의 정답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빠들은 다른 아빠들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정말 적은 것 같아요. 아빠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구조나,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아빠들도 육아나, 결혼 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육아휴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하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더 행복하고 싶을 뿐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 ‘당연한’ 일을 하는 것에 너무나 많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저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은데, 아빠들에게 ‘슈퍼맨’이 되기를 요구하죠. 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빠들이 슈퍼맨이 아닌 아빠 역할을 할 수 있게 더 많은 분들과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북통신 라이프스타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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