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그리고 몇십 분 뒤, 나는 일산 정발산동의 한 스터디카페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랑이 두 손을 턱에 받친 채 나를 쳐다보았고, 내 손에는 핫도그가 들려 있었다. 스터디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랑은 운전기사를 시켜 핫도그 서른 개를 스터디카페 휴게실에 두었고, 친절하게도 ‘마음껏 드세요. 사장 서랑 올림.’이라는 친필 메시지도 써 두었다. 휴게실에 들른 학생 한 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스터디카페 내부에 이 상황을 알렸고, 휴게실은 곧이어 시장통이 되었다. 랑은 휴게실 한편에 우아하게 선 채로 학생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도 잽싸게 핫도그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넸다. 한바탕 학생들이 물러가자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여기 진짜 사장님은 CCTV 안 보셔?”
내가 핫도그를 조심스레 깨물며 우물거리자 랑은 곧바로 대답했다.
“내가 사장이라니까.”
“그러니까, 너는 사장인데 진짜 사장님도 따로 있는 거잖아?”
“그냥 내가 사장인 걸로 해.”
나는 입을 닫았다. 진짜 사장이 알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운전기사에게 시켜서 돈 몇 푼 쥐여 주면 끝날 문제겠지, 뭐.
“사장님, 여기 조명이 좀 이상한데요.”
눈을 동그랗게 뜬 그 학생이었다. 랑은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그 학생에게 한 번 웃어 주고는 기다리라고 말했다.
“우진 씨, 좀 도와줘요.”
“내가? 아니, 제가요?”
나는 아차 싶어 존댓말을 했다.
“운전기사가 퇴근했거든요. 그래서 우진 씨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랑은 그저 나를 지그시 쳐다볼 뿐이었다. 랑을 만나기 전 편의점 앞에서 한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학생에게 가요,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다행히 휴게실 구석에 남는 조명이 있어 갈아 끼울 수 있었다. 문제는 조명 하나를 갈자 여기저기서 덮어 뒀던 문제가 속출했다는 것인데, 나는 이 스터디카페의 진짜 사장이 CCTV 작동법을 모르거나 책임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림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짜 사장이 활보하고 외부인이 내부 물품을 멋대로 교체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을 리가. 조명에 이어 가습기의 상태도 체크하고 한겨울에 살아남은 불굴의 모기도 몇 마리 잡으니 학생들도 집중력이 깨졌는지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제 끝났다고, 다른 문제는 다음에 해결하겠다며 뒤도는데 또 다른 학생 한 명이 새되게 소리쳤다.
“불이야!”
학생이 가리킨 곳은 스터디카페와 휴게실 사이에 있는 유리문이었다. 희미한 연기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온 것을 그 순간 처음으로 후회했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랑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쩌면 난 출근 십 분 전에 일어나 준비할 때보다도 더 빠르게 랑에게 달려갔다. 제발 다치지 마라. 다치지 마라. 그러나 랑은 느긋하게도 휴게실 한쪽 벽에 달린 창문에 고개를 내민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어찌어찌한 이유로 담배 불씨가 랑의 근처에 놓인 핫도그 포장지에 붙어 불이 난 것이다. 랑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담배 연기를 도넛 모양으로 두 번 내뱉곤 뒤돌았다.
“어? 해결됐어? 이 연기는 뭐야?”
나는 곧바로 달려가 랑을 안으려다 겨우 용기를 내 왼손 약지를 잡았고, 그 바람에 당황한 랑이 담배꽁초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뻔했다. 119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은 기어코 터져 버린 폭죽에 잡아먹혔다.
“좋아해. 네가 가짜 사장이든, 거짓말을 하든,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 그냥 그럴 수밖에 없어.”
내가 정신이 팔린 동안 한 학생이 119에 신고해 불길은 빠르게 잡힐 수 있었다. 랑이 점찍은 스터디카페는 기사에서나 보던 방역 사각지대로, 스프링쿨러며 소화기조차 없었다. 불을 초기에 발견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랑은,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을 위험에 빠지게 했단 사실에도, 진짜 사장의 고함에도 굴하지 않았다. 사과의 표시로 고개를 까딱 숙이는 게 다였다. 하물며 건물 내 불길 진압으로 1층 바깥에 모인 사람들 앞에 대고 이런 말까지 했다.
“여러분은 매일 연기 안 하고 살아요? 내가 아닌 타인이 되고 싶어서 늘 아등바등하지 않아요? 내가 한 거랑 뭐가 다르지? 진짜 궁금하네.”
그 말 끝에 랑은 나를 책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재미없다고 했지. 이런 말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폭죽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역시 안 될 결말이었나 보다. 나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난히 더 반짝이는 랑의 눈동자 속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 여전히 사랑이 퐁 솟은 내 눈빛이 보였다. 눈을 내리깐 뒤에야, 애써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목에서 꿈틀댔다.
“내 연기 진짜 좋았지? 재난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어때?”
랑은 나긋하고 자신감 있고 우수에 젖은 목소리로 빙긋이 웃었다.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