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예찬 (1)

미니픽션

by 김항

열세 번째 도로주행 시험 날 아침, 또 비가 왔다. 잠깐 오고 그칠 비가 아니라 한 바가지 들이붓는 장대비로 보였다. 어젯밤 기상청 예보상으론 분명 쾌청한 날씨라고 했는데. 귓가로 변 감독관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기상청으로 이직하라니까. 어떻게 시험 날만 잡으면 비가 오냐. 나 같으면 바로 뽑지 뽑아. 또 다른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아메가훗테루(あめがふってる). 비가 올 때면 늘 이렇게 말하던 아내. 우리는 네 달 전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내가 칠 년간 다닌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앞둔 때 경영 악화로 권고사직을 당한 시점이었다. 내면의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너는 실패했어.


네 달 전 나는 내 삶에 아메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룰 수 있는 사소한 성공이 필요했다. 아멘. 진실로 그러했다.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한 건 반쯤 충동이었다. 실패만 가득한 삶 속에서 뭐든 하나라도 이루고 싶었고, 30대 중반이 되고도 아내와 자차로 여행 한 번 가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별거하고서야 들었다. 아내와는 칠 년 전 동네 북카페에서 주최하는 일본어 초급 모임에서 만났다. 우리를 포함한 대여섯 명이 링고오타베테루, 아이시테루, 아메가훗테루라는 문장을 같이 읽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왔었다. 아메가훗테루. 청아한 아내의 목소리가 빗속에 녹아 있었다.


“전방 주시 해야지. 신호 바뀌었잖아.”


시험 중에 생각에 너무 깊게 빠져들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나는 다급하게 액셀을 밟았다. 와이퍼가 연신 움직이는 통에 시야가 불안정했다. A 코스 다음으로 쉬운 C 코스였으나 난 여전히 버벅댔다. 옆에서 변 감독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문석 씨, 떨어져도 돼요. 알잖아요? 몇 번을 떨어져도 밥 사 줄게.”


열세 번째 시험도 보기 좋게 낙방했다. 변 감독관과 나는 운전면허 시험장 근처 단골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창가로 비가 내리고 우리 앞의 칼국수는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었다. 짧은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자 그가 내 잔에 소주를 따르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나 또한 변 감독관 잔에 소주를 따르니 그는 눈을 반달로 접으며 웃었다. 치열이 고르지 않았지만 시원하게 벌어지는 입꼬리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이상하다면 이상했고 특별하다면 특별했다. 변 감독관은 금요일 5시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진 수강생에게 밥을 사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금요일마다 한 시간 일찍 퇴근을 시켜 주기에 이날마다 응시했을 뿐이었다. 운전면허 학원은 금요일 5시가 학원 종료 전 마지막 시험 시간이었다. 다른 요일은 모두 6시까지 했고 주말에는 쉬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금요일이 복권 같은 날이라 이거지. 그런데 몇 달간 우리 문석 씨가 이런 내 금요일 저녁 시간에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거라고.”

“저번에도 그 말씀 하셨어요.”


몇 잔 만에 취기가 오른 그는 떨어진 거 조금은 잘했다는 생각 들지? 하고 허허실실 웃으며 말했다. 마침 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전을 우리 테이블에 놓았다.


“이건 감사하다는 의미로.”


나는 감자전 한 조각을 크게 뜯어 변 감독관의 앞접시에 놓았다. 그의 말대로 나는 지금 이 순간 자책이나 후회보다는 희미한 기쁨과 안락을 느꼈다. 떨어지길 잘했다. 다시 그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시험 종료 몇 분 전 어쩌면 난 일부러 신호를 위반해 실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이 시간이 내 삶을 촉촉하게 해 주는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른다고 곰곰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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