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취미 생활을 꿈꾸는 분들을 위한 그림 그리기 방법
‘열차가 조금 지연되어 10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종종 다른 지역에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이 주시는 말씀이다. 서울에 오는 김에 특별한 추억을 갖고자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오일파스텔에 관심이 있어 검색하다가 배워보고 싶어 먼 거리를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근거리에서 방문하시는 분들의 형태도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혼자만의 취미생활을 위해, 연인 간의 색다른 데이트를 찾아,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자 방문하시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여러 이유로 이곳까지 소중한 발걸음을 주신 분들께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해 드리기 위하여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따님과 함께 방문하신 분이 계셨는데, 백옥 같은 피부에 선한 미소를 지닌 70대 여성분이셨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전체적인 과정을 설명하려는 차에 수강생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까지만! 첫 번째 다하고 두 번째 알려줘요. 기억 못 해.’ 순간 아차 싶었다. 평소 내가 엄마에게 서운함을 호소할 때면 ‘너도 나이 들어봐. 엄마도 젊었을 땐 다 기억했어.’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는데, 지금에서야 그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그래 맞아. 이분의 눈높이에 맞는 수업을 적용해 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직장생활을 하셨기에 나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동네 할머님들 사이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귀여움을 받으며 뛰어놀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60~70대분들의 따뜻함과 여유로움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놀이하며 바늘 코에 실을 꿰는 것을 자연스레 습득했고, 지팡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며 조금 느리지만 진심 어린 한 터치를 기다리는 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수강생분이 그리고 싶어 하셨던 보리밭 그림을 단계에 맞춰 알려 드렸다. 배경색을 칠하는 방법부터 보리를 묘사하는 방법까지 세부적인 단계로 나눠 하나씩 차근차근 익혀가실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수업 단계를 몇 가지로 분류해 놓고 수강생의 상황에 따라 알맞은 방식을 적용하고는 한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고 조금 느린 분들에게는 차근차근 쉬운 방법으로, 빠르고 수준 높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 분들께는 조금 더 집약적으로 수업한다. 그러다 보니 취미 공방은 어느덧 6세 아동부터 70대 수강생분들까지 오일파스텔 하나로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성향도 나이도 그림 스타일도 다를지 모르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오일파스텔을 다룰 줄 안다는 점에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서로 간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고 있었다. 보폭을 맞춰 함께 걸으며 각자가 바라보는 곳까지 행복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