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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Nov 27. 2020

나의 자존감 지킴이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첫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첫 번째 영화들.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이 떨어지는 요즘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옛날부터 생각했던 영화 큐레이션 콘텐츠를 이 주제와 이 영화들로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연히라도 찾아온 사람들이 이 영화들을 보고, ‘그래도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첫 번째 영화,

에비 콘 감독과 마크 실버스테인 감독의 <아이 필 프리티>


 메인 예고편 (01:49) https://youtu.be/5xM5KSQxMeo

 뛰어난 패션센스에 매력적인 성격이지만 통통한 몸매가 불만인 ‘르네’ 하아.. 예뻐지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늘에 온 마음을 담아 간절히 소원을 빌지만 당연히 달라지는 건 1%도 없고. 오늘도 헬스클럽에서 스피닝에 열중하는 ‘르네’! 집중! 또 집중! 난 할 수 있다! 예뻐질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 미친 듯이 페달을 밟다가 헬스클럽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머리를 부딪히고.. 지끈지끈한 머리, 창피해서 빨개진 얼굴로 겨우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하다! 헐, 거울 속의 내가… 좀 예쁘다?! 드디어 소원 성취한 ‘르네’의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진다!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 주연인 에이미 슈머 배우의 연기가 압권이다. 극 중에서 그녀의 연기는 과하지 않은 텐션을 유지하고, 매 순간 매 상황에 탁월하며,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어쩜 그렇게 밉지 않으면서 매력 넘치는 르네를 연기할 수 있었는지 에이미 슈머 배우의 전작들 역시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독보적인 연기가 매 순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에이미 슈머 말고도 이 영화가 가진 발군의 장점은 예뻐진 나를 CG 하거나 다른 배우가 연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한 연출이 가지는 메시지의 힘은 아주 강렬하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나는 나대로 아름답고 나대로 매력적이다. 가장 나다울 때 나는 가장 사랑스럽다.’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인 줄도 모르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다 끝나고 영화관을 나올 때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치유받은 느낌, 당장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단번에 첫 번째 자존감 지킴이 영화로 <아이 필 프리티>를 꼽았다.





 두 번째 영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굿 윌 헌팅>


메인 예고편 (00:30) https://youtu.be/z_AzJrIUEK8

 수학, 법학, 역사학 등 모든 분야에 재능이 있는 ‘윌’(맷 데이먼)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세상에 마음을 열지 못하는 불우한 반항아. 절친인 ‘처키’(벤 애플렉)와 어울리던 ‘윌’의 재능을 알아본 MIT 수학과 ‘램보’ 교수는 대학 동기인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그를 부탁하게 되고 거칠기만 하던 ‘윌’은 ‘숀’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상처를 위로받으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굿 윌 헌팅>은 자존감 지킴이 영화의 고전이라고 느낄 정도로 어쩌면 내겐 힘들 때마다 찾는 친구 같은 영화다. 이 영화는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두드리는 대사와 따듯한 감성을 전달한다.

 숀 교수의 직설적이면서도 배려가 느껴지는 말들은 차갑게 굳어있던, 모두를 밀어내던 윌의 마음을 천천히 녹인다.

 물론 윌이 가진 재능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재능이지만, 그런 재능을 가진 윌의 선택이 평범한 우리에게 어쩐지 위로가 된다.


 담담하게 대화에 집중한 연출이나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캐릭터들의 잔잔한 호연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속에 천천히 차오르면 온기를 전한다.


 다른 어떤 영화보다 가슴이 따듯해지는 이유는 윌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고뇌와 사투가 크다. 윌 자신은 혼자라며 벽을 치고 살았지만, 윌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윌을 위했고 윌을 위해 싸웠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나도 내가 모르는 배려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눈물이 났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보고 그런 기분을 꼭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





 세 번째 영화,

하라 케이이치 감독의 <컬러풀>


메인 예고편 (01:34) https://youtu.be/Hvqrm635La4

 나는 죽었다. 하지만 사후세계에서 천사인듯한 ‘프라프라’를 만나게 되었다. ‘당신은 큰 죄를 짓고 죽은 영혼이지만, 다시 한번 세상에 돌아가서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영혼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단 ‘6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전생의 죄를 기억해야만 환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고바야시 마코토’가 되어있었다. 나의 영혼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받았습니다. 나는 살아났다. 자살한 지 얼마 안 된 중학교 3학년 고바야시 마코토의 삶은 최악이었다. 무능력한 아버지, 춤 선생과 바람난 엄마, 나를 경멸하는 형, 학교 성적은 반에서 꼴찌, 거기에 왕따! 전생의 죄를 기억하기는커녕, 고바야시 마코토의 인생 자체가 만만치 않다. 프라프라의 안내를 받아가며 하루하루 마코토의 삶을 살아가지만, 유예기간의 끝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환생은 포기하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즐기며 살기로 한 순간… ‘나’로 인해 ‘고바야시 마코토’의 삶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한 번의 실패, 두 번째 기회. 다녀오겠습니다.


 <컬러풀>은 일본 특유의 불행 포르노가 깔려있는 어둡고 우울한 영화이지만, 나의 자존감 지킴이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이야기를 끌고 오는 방식이 충분히 납득 가능한 방식이었고 특히 결말이 정말 많은 의미를 줬기 때문이다.

 스포 없는 큐레이션을 위해 더는 결말에 대해 설명하지 않겠지만, 영화의 앞부분이 괴롭다면 이 영화는 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이 영화들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조금이나마 높아졌으면 해서 이지, 결코 기분이 상해가며 억지로 영화를 감상하라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 영화가 가지는 장점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그들의 불행이 조금은 덜 사실적이라는 것과,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더욱 동화처럼 느껴지는 사후세계와 그 시스템, 그리고 '색감'이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갈수록 다채로워지는 색감에 눈이 즐거워지고,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수수께끼가 의문점을 만들면서 계속 따라가게 된다. 마지막에는 큰 여운까지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네 번째 영화,

리치 무어 감독의 <주먹왕 랄프>


메인 예고편 (02:17) https://youtu.be/wErk0gZpq38

8비트 게임 ‘다고쳐 펠릭스’에서 건물을 부수는 악당 주먹왕 랄프. 30년째 매일같이 건물을 부수며 직업에 충실해왔지만, 악당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급기야 자기 게임을 이탈하여 다른 게임으로 들어가는 랄프! 슈팅게임 ‘히어로즈 듀티’를 거쳐 레이싱 게임 ‘슈가 러시’에 불시착하는 랄프는 과연 게임 세계의 새로운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랄프가 떠난 후 고장 딱지가 붙은 ‘다고쳐 펠릭스’ 게임은 오락실에서 퇴출될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나의 자존감 지킴이 영화인 이유는 그 장면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랄프가 자신의 게임인 '다고쳐 펠릭스'가 30주년이 돼서야 참석하게 된 악당 모임 장면 말이다. 팩맨 맵에서 진행되는 악당 모임은 마지막에 모든 악당들이 손을 맞잡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I'm bad, and that's good. I will never be good, and that's not bad. There's no one I'd rather be than me."
 나는 나빠, 그건 좋은 거야. 난 절대 착해질 수 없어, 그건 나쁜 게 아냐. 날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게임 속 악당들이 주문처럼 외우는 저 말이 이상하게 내게 위로가 됐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인정하고 다독이는 말이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자신을 잘 알고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된다면 정말 건강한 세상이 될 것이다.


 비단 저 대사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다고쳐 펠릭스'의 악당 랄프가 주인공을 상징하는 메달을 얻어 영웅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게임 속 악당과 엑스트라를 재조명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자존감 지킴이 영화로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모두가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외부요인으로 생긴 불행이 지속될수록 그 불행의 원인을 자꾸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자기 살을 갉아먹지 말고 나를 조금 더 다독이고 안아줄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백신과 치료제 얘기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기도 하거니와 어쨌든 뭐든 끝은 있기 마련이기에, 우리 모두가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그 날까지 더욱 힘을 비축하며 지냈으면 좋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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