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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Dec 03. 2020

여행의 희로애락을 담은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두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두 번째 영화들.


 누군가 나에게 사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나는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기 위해서 라고 대답할 정도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지금 이 상황이 통탄스럽다.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 이틀의 기억으로 1년 10년을 살기도 하는 것이, 여행이 주는 큰 영향력이다. 그 며칠의 기억들로 지금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나로써는 여행을 떠올릴 영화가 절실하다.


 눈이 탁 트이는 영상으로라도, 괜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이야기로라도 지금의 아쉬움을 달래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영화,

벤 스틸러 감독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메인 예고편 (02:25) https://youtu.be/TZpnJlX0pe8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상상’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그에게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생긴다. 평생 국내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문제의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월터, 그 누구도 겪은 적 없는 특별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가 여행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이다. 이 영화는 상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아쉬운 결단력에 경종을 울리고, 새로운 눈을 뜨게 다.


 월터는 '라이프'지의 마지막호 표지 사진을 찾기 위해 본의 아니게 여행을 시작해버렸지만, 우리는 월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월터가 점점 생기를 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생기가 우리에게 또다른 영감을 준다.

 스크린으로 쏟아지는 눈이 시원해지는 풍광 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짜릿한 어드벤처가, 저절로 우리를 떠나고 싶게 만든다.





 두 번째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메인 예고편 (01:20) https://youtu.be/1cty7e6hYZM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과 비엔나로 향하는 제시.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짧은 시간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나와 함께 비엔나에 내려요” 그림 같은 도시와 꿈같은 대화 속에서 발견한 서로를 향한 강한 이끌림은 풋풋한 사랑으로 물들어 간다. 밤새도록 계속된 그들의 사랑 이야기 끝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들은 헤어져야만 하는데… 단 하루,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 낭만적인 로맨스가 다시 피어오른다.

 홀로 간 여행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이성. 마음이 통하는 대화, 감정이 묻어나는 시선 그리고 헤어질 때의 아쉬움.


 한 번쯤은 이런 로맨틱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는 그 상상을 실현시켜준다. 감히 혼자 여행 가기 두려워하는 여행자들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을 적극 권장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소 혼자 여행을 즐겨하는 내게 이 영화는, 낯선 이와의 대화가 주는 것들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예제 같은 영화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한테 내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새삼스럽게 새로운 얘기를 듣기도 하는 그 과정이, 바로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시야가 넓어지고,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동시에 이뤄지고, 새로운 감정을 주고받는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하루빨리 다시 느껴보고 싶다.




 세 번째 영화,

라이언 머피 감독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메인 예고편 (02:02) https://youtu.be/m3zukD5_DH4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 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 결국 진짜 자신을 되찾고 싶어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기로 결심한다.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일 년 간의 긴 여행을 떠난 리즈.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 인생도 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일 년 동안 세 나라를 여행하는 리즈의 여정에 함께 하는 영화다. 비록 그 여정이 부유한 백인의 것일지라도 충분히 함께 할 가치가 있는 여정임이 분명하다.


 일에 치여 살던 리즈는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리즈가 첫 여행지인 이탈리아로 떠나 처음 첫 발을 내딛는 순간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있다.

이탈리아에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남자가 매일 교회에 나가, 동상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성자님, 제발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어느 날 동상이 살아 움직이며 대답했다.
'아들아,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니, 로또부터 사거라'

나에겐 세 장의 로또가 있다.

 여행의 시작을 뜻하는 이 내레이션을 들은 순간, 띵 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은 엄청난 상금이 걸린 로또와 맘먹는, 가능성을 품은 도전이다. 로또를 사는 것보다는 품이 들고 어쩌면 무모할 수 있지만, 더욱 가치 있고 돈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경험이다.


 편견을 내려놓고 천천히 리즈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얼마나 남들 시선에 얽매어 살았는지, 과거를 지금을 얼마나 돌아보며 느끼며 살았는지, 불안이 나쁜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네 번째 영화,

빌 어거스트 감독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메인 예고편 (01:37) https://youtu.be/2F-u2PCYvNE

오랜 시간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연히 위험에 처한 낯선 여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게 되는데…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여행을 마구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아닐 수도 있다. 여행을 해서 너무 즐겁고 이 여행지를 다시 오고 싶고 관광지가 많고 그런 여행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여행의 쾌락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하는 기쁨이 주가 된다. 일상에 휩쓸려 지냈던 지난날에서는 채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어떤 깨달음을 주는 그런 여행.


 그를 이끈 책 속 이야기와 그의 공상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 영화를 보면 되려 머리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 무거움이 싫지 않다.





 다섯 번째 영화,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와일드>


메인 예고편 (02:00) https://youtu.be/ryXnYSiSeNM

가난한 삶, 폭력적인 아빠,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엄마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려는 찰나,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온몸을 다해 의지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포기한 셰릴 스트레이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해가고… 그녀는 지난날의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수 천 킬로미터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 PCT를 걷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와일드> 역시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찐 여행 영화다.

 숨이 턱턱 막히고, 두 발로 온전히 내 무게를 실감하며, 살기 위해 어깨에 세상을 얹고 다니는 그런 진짜기 여행 말이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옛 기억에 밤새 뒤척이기도 하고, 역시 혼자 오면 안 됐다와 혼자 오길 잘했다를 반복하며, 가끔 내가 대견스러운 오만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런 여행.


 내가 이 여행을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연민 때문이 아니다.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셰릴과, 여행 중에 셰릴과 함께 하는 수많은 구절들 때문이다. 셰릴이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적어 내린 그 말과 그 이름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보면 이 영화가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이 다섯 영화들이 지금 같은 시국 속에서 작은 대리 설렘을 느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화면 속에서 빛나는 공간들과 시간들과 감정들에 취해서 잠깐 지금을 잊어도 좋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우울해하지 말고 미리 앞으로 갈 여행의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추천한다. 왜냐면 여행은 계획을 세울 때가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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