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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Dec 06. 2020

서서히 온 내 '딜레마'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세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세 번째 영화들.


 '딜레마'의 사전적 의미는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다.

 딜레마를 설명하는 철학사전에 나오는 예시는 또 이렇다. "네가 만일 정직하면 세인이 증오할 것이고, 만일 부정직하면 신이 증오할 것이다. 너는 정직하든가 또는 부정직하다. 그러므로 너는 세인의 증오를 받든지 신의 증오를 받는다."


 깔끔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난감하고 짜증 나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아래 영화들은 서서히 내게 그런 딜레마를 안겨준, 고맙고도 짜증 나는 영화다. 짜증 난다고 표현하면 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들을 만나고 실제로 내 삶이 변하기도 했고 세상에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소중한 영화들이기도 하다.


 미리 질겁하 말고 차분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그게 시작일 테니까.





 첫 번째 영화,

봉준호 감독의 <옥자>


메인 예고편(02:07) https://youtu.be/eOdMVj1mnHE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옥자>를 첫 번째로 꼽은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내 삶을 바꾼 영화이기 때문이다.

 미자와 슈퍼 돼지인 옥자가 겪게 되는 일들이, 별생각 없이 먹던 음식들을 낯설게 했고 내내 맘에 걸리게 하다가 지금은 천천히 육식을 끊어가고 있는 중이다.


 옥자가 내게 준 딜레마는 지금 이 세상에게 꼭 필요한 딜레마일 것이다.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공기청정기는 필수가 되고, 한 달 내내 연일 비가 내리기도 하고, 만년설이 녹아  동물들이 살 곳을 잃고 있으며 지금은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1년이 넘는 소중한 일상을 앗아갔다. 이때까지 일어난 많은 일들이, 충분히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이 딜레마는 충분히 나를 고민케 해도 되는, 고민해볼 가치 있는 딜레마다. <옥자>는 그냥 단순히 영화로도 너무 즐겁다, 특히 음악이 아주.





 두 번째 영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플라이트>


메인 예고편(01:38) https://youtu.be/H_Y_O-XVad0

완벽한 비행실력 빼고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파일럿 휘태커. 어느 화창한 가을날, 그는 정원 102명, 올랜도-애틀랜타행 사우스젯 227 항공기 조종석에 앉는다. 그러나 이륙 10여분 후 강한 난기류에 이어 기체 결함이 발생하고 사우스젯 227기는 속수무책으로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엔진마저 고장 난 상황! 파일럿 휘태커는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연속으로 기체를 뒤집어 활공하며 기적적으로 비행기를 비상착륙시킨다. 100% 사망의 위기에서 95% 승객의 목숨을 살려내며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휘태커. 하지만 하나의 진실이 그를 인생 최대의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과연 추락사고를 둘러싼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휘태커 기장은 추락하는 비행기를 기적적으로 비상착륙시키고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다. 하지만 사고 당일 밤 채혈된 휘태커의 피에서 알코올이 검출되면서 휘태커는 최악의 스캔들에 휩싸인다.


 휘태커가 단시간에 겪게 되는 찬사와 비난 모두 납득 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큰 딜레마를 남긴다.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비행으로 승객의 대부분을 살렸기에 찬사 받아 마땅했고, 혈액에서 검출된 알코올이 말해주듯 이때까지 그의 행실은 비난받아 마땅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정말 어떤 태도로 휘태커를 바라봐야 할지 고민된다.

 신뢰를 잃은 사람이 완벽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과정이 중요한지 결과가 중요한지. 휘태커를 따라가다 보면 나조차도 딜레마에 휩싸이게 된다.


 말할 필요 없는 덴젤 워싱턴의 호연과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의 연출이 어우러져 극적 긴장감을 계속해서 자아낸다.





 세 번째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


메인 예고편(01:13) https://youtu.be/Q3N5oiivKHc

아내가 살해당한 후, 10분밖에 기억 못 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사진, 메모, 문신으로 남긴 기록을 따라 범인을 쫓는 기억 추적 스릴러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주목받는 계기가 된, 그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기발한 전개 방식과 주변 인물의 캐릭터를 잘 직조해낸 연출이 단연 발군다.

 <메멘토>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독특하다. 오직 10분만 기억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점을 올곧이 따라가는 신선하고 미스터리한 흐름에, 내내 물음표를 품고 영화를 봐야만 한다.


 내가 <메멘토>를 내게 딜레마를 안기는 영화로 꼽은 이유는 "믿음"이라는 주관적인 감정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너무 하기도 너무 간사하기도 해서, 이 영화를 보면 그 믿음이라는 감정의 정의가 여러 번 전복되고 종국에는 믿는다는 행위 자체의 의미까지 되돌아보게 한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보기를 추천하고 영화를 다 보고도 깔끔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 영화를 시간을 두고 한번 더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이들의 해석을 찾아보는 일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영화 속에서 그 해답을 직접 찾아가는 재미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네 번째 영화,

크리스티안 볼크만 감독의 <더 룸>


메인 예고편 (01:53) https://youtu.be/aHcy3A9WmME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비밀의 방’이 있다. 돈, 다이아몬드, 최고급 샴페인, 반 고흐 걸작… 원한다면 아기까지도.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준다. 단, 소원은 신중하게 빌 것! 그리고 규칙을 반드시 지킬 것!

 <더 룸>은 뉴욕에서 이사 온 한 부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는 비밀의 방을 우연히 발견하고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예고편 마지막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원하는 것을 못 갖는 인간보다 원하는 대로 다 갖는 인간이 더 위험해."


 이 영화는 간단한 설정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딜레마를 안겨준다. 인간이 정말로 원하던 것을 노력 없이 얻게 됐을 때의 그 집착과, 갑자기 조물주가 돼버린 한낱 인간이 겪는 고뇌와 딜레마.

 특히 그 방과 그 방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반응이 정말 많은 점을 시사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면서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에 자연스레 이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과 도덕성, 조물주와 피조물. 그동안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딜레마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다섯 번째 영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언브레이커블>


메인 예고편(02:12 한글자막 없음) https://youtu.be/fNeCB2ALNoA

필라델피아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하여 131명이 현장에서 즉사한 대형 사고였지만 놀랍게도 한 명의 생존자가 발견된다. 바로 대학교 풋볼 스타디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이다. 데이빗은 대학시절 영웅처럼 떠오르던 스타 선수였으나 자동차 사고로 선수 생명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다. 놀라운 것은 그때의 사고에서도 그가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났다는 점이다. 혼자만 살아났다는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데이빗은 자신의 승용차에 꽂혀있는 쪽지를 발견하고는 쪽지를 보낸 엘리야 프라이스(사무엘 잭슨)라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렇다면 엘리야 프라이스는 어떤 이유에서 데이빗 던이 자신을 만나러 오도록 쪽지를 남긴 것일까?

 <언브레이커블>은 <식스센스>를 만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선보이는 히어로 삼부작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히어로물이라고 해서 스펙터클한 액션과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바라고 본다면 아주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저 한 사람의 고뇌를 더 깊게 조명한 작품이다.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제목이 바로 그의 특징을 대변한다. 너무도 평범한 일생을 살았던 데이빗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사고 같은 깨달음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각자가 가진 능력과 그 능력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능력과 행동에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함께 고민하게 된다.


 능력의 가치 행동에 대한 책임이라는 딜레마가 영화 내내 잔잔히 흐르면 긴장감과 생각할 거리를 계속해서 제공한다. 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진한 드라마를 담은 영화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좋은 대답보다 '좋은 질문'이 더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좋은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고 우리가 얼마나 좋은 질문들을 외면하고 살았는지 알려주는, 이 영화들로 생각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2시간짜리 좋은 질문을 받아 들고 좋은 대답을 준비해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견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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