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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Dec 10. 2020

여자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다섯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다섯 번째 영화들.


 생각해보면 남자들의 끈끈한 의리와 우정을 주제로 한 영화는 찾기 운 편인데, 반대로 여자들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영화계도 시대에 발맞춰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인식 개선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래서 오늘 꼽아본 큐레이션 주제는 '여자들의 우정'이다. 위의 두 영화는 친구의 우정을 다뤘고, 아래 두 영화는 자매의 애를 담아냈다. 공교롭게도 모두 '성장 스토리'라는 점이 가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는 지점이다.


 런 소재의 영화들이 더 많이 소비되고, 생산됐으면 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이번 큐레이션이 부디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첫 번째 영화,

증국상 감독의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메인 예고편 (01:31) https://youtu.be/lCNb6DW7Cps

열셋, 운명처럼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열일곱, 우리에게도 첫사랑이 생겼다. 스물, 어른이 된다는 건 이별을 배우는 것이었다. 스물셋, 널 나보다 사랑할 수 없음에 낙담했다. 스물일곱, 너를 그리워했다. 14년간 함께, 또 엇갈리며 닮아갔던 두 소녀의 애틋하고 찬란한 청춘 이야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이 주제로 큐레이션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이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라는 단편 소설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이 구절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인 것 같다.

 연애 같은 우정과 우정 같은 연애. 너무도 오래고 깊어서 깊어진 감정이 꼭 연애 같은 우정과, 오래서 설렘보단 신뢰에 의지한 연애. 그 두 가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몽글몽글한 이야기이다.


 또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구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도입월이 썼다는 웹소설을 안생에게 들고 가는 상황나, 둘이 떨어져 있을 때의 흐름, 재회했을 때의 흐름이 참 여러 장르의 구조를 빌려왔다는 생각이 드는 똑똑한 영화이다.


 안생과 칠월의 우정을 깊게 들여다본 이 영화는, 안식처 같기도 라이벌 같기도 한 두 사람의 관계와 더불어 주변 인물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환경까지 여러 가지 설정들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즐기면 한층 더 풍성한 관람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영화,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파이어>


메인 예고편 (01:36) https://youtu.be/SZD-B5g5G14

모두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시대, 꿈에서 소외당한 소녀들이 ‘폭스파이어’라는 비밀 그룹으로 모였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빠에게도 버림받은 소녀 ‘렉스’를 리더로 하여 모인 여섯 소녀들은 어리고 가난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을 농락하는 이들을 조롱하며 세상과 뜨겁게 맞선다. 그러나 단순히 복수를 위해 뭉친 소녀들의 행동은 점차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지고, 뜻밖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위기를 맞이하는데…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이 애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수나 놓으며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조선 사대부 여인들은 다 그리 살던데." 그러자 애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폭스파이어>를 돌이켜 생각하면 이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이 영화는 불꽃같은 소녀들의 이야기다.


 세상이 어떻게 그 소녀들을 궁지로 내몰았는지, 그곳에서 어떻게 모여서 어떻게 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면 자연스레 세상을 향해 치미는 화가 느껴지고, 어린 마음에 대한 답답함에 손을 뻗어 도움을 주고 싶어 진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순간 저질러버린 일들이 몰고 오는 나비효과들과, 보호 없이 어른이 돼버린 소녀들이 차가운 세상에 나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자 점점 스스로와 상대방을 옭아메게 되는 과정이 정말 진득하게 잘 그려져 있다.


 한 때는 나의 전부였던, 그 시절 친구들이 떠오르게 하는 <폭스파이어>를 보면서 그들의 우정이 왜 그렇게 깊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연대가 왜 그런 방식일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생각의 폭이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세 번째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메인 예고편 (01:26) https://youtu.be/V-MoXpzKXv0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는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추억도 어느덧 희미해졌지만 홀로 남겨진 이복 여동생 ‘스즈’에게만은 왠지 마음이 쓰이는데..
“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5년 연출작이자, 동명의 만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네 자매 이야기다. 정확히는 홀로 남겨진 이복동생 스즈를 거둬 함께 살게 된 세 자매, 그리고 스즈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 은은하게 변하는 세 자매 각자의 이야기와, 갑자기 전혀 다른 환경에 들어와 살게 된 스즈의 적응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네 명이 모두 각자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각자가 얽혀있는 인물과 환경 또한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너무 즐겁다. 그 안에서 나는 누구에게 숨어있는지, 어떤 면은 누구와 비슷하고 어떤 면은 전혀 다른지를 비교해보면서 보면 더욱 즐거운 관람이 될 것이다.





 네 번째 영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


메인 예고편 (02:27) https://youtu.be/79_nkjuOWVg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 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는데…

 <작은 아씨들>은 동명의 소설을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무려 7번이나 영화로 제작됐다. 오늘 큐레이션 할 영화는 그레타 거윅이 연출한 2019년작이다.


 시대적 배경이 1861년 미국 남북전쟁과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극인지라 의상과 소품, 미술을 보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시대가 주는 여성의 입지와 한계, 전쟁, 교통과 의학의 한계 등이 이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이 영화는 네 자매가 각자 이루고자 하는 꿈과 7년 후의 그들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긴 세월의 변화에 집중한다.

 둘째 조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만, 메그와 베스 그리고 에이미의 이야기까지 각자의 사정과 생각이 진하게 배어있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작은 아씨들>은 위에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비교해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동양, 현대, 일 년정도의 짧은 기간을 다룬 반면, <작은 아씨들>은 서양, 근대, 7년의 긴 시간을 다다.

 <바닷 마을 다이어리>에는 없는 <작은 아씨들>주요 포인트는 바로 로리의 존재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라고 해도 스포일러는 스포일러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웃집 소년 로리의 존재가 이 자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이 영화가 가장 신경 쓴 점이자 우리에게 많은 토의 거리를 주는 부분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이복동생이라는 설정이 있고, <작은 아씨들>에는 로리가 있다. 이게 아주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설정을 염두에 두고 두 영화를 감상하면 재미는 배가 될 것이다.





 이 큐레이션은 지극한 공감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가는 큐레이션이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보는 경험이 너무도 신선하고 새로워서 숨에 빠져들어 눈물을 쏟았던, 그 경험에서 비롯됐다.

 비단 나만의 경험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 영화들을 보고 반가웠고 즐거웠고 공감됐고 눈물 흘렸던 그 경험들이 앞으로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동안 남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어왔다면, 이제는 조금씩 여자들의 이야기도 더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큐레이션 속 영화들을 감상하면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면 그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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