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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Dec 11. 2020

충격과 혼돈의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여섯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여섯 번째 영화들.


 오늘 큐레이션은 절대 절대 다른 정보를 찾아보지 않기를 추천한다. 검색창에 검색하는 그 순간 스포일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영화들은 한순간 순간이 너무도 중요해서 스포일러를 함유한 어떤 콘텐츠도 보지 않고 순도 100% 그대로의 영화를 즐기길 권장한다.

 장르가 장르인지라 감독의 의도 그대로 온전히 영화를 감상하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영화들을 접하고 적어도 하루는 충격과 혼돈에 빠져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다. 그 정도로 후폭풍이 세다는 것만 알아두고 오늘의 큐레이션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영화,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M. 버터플라이>


메인 예고편 (01:49 한글자막 없음) https://youtu.be/fgANS15AN4I

1964년 북경. 프랑스 대사관의 회계사 갈리마드는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공연하는 중국 경극 배우 송 릴링에게 매혹된다. 한 파티에서 조그만 체격에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된 갈리마드는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오페라를 보러 가면서 둘의 관계는 발전된다. 영리하게도 송 릴링은 서양 남자와 동양 여자라는 점을 이용한다. 남자 앞에서 옷을 벗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던 갈리마드는 그것을 동양 여자 특유의 보수적인 태도와 수줍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갈리마드가 부영사로 승진하여 기밀서류에 관여하게 되자 송 릴링은 미국의 베트남 정책 등의 정보를 빼내며 공산 체제의 유능한 스파이가 된다. 여자는 노예로, 남자는 백인 악마로 성 역할을 해온 이들은 남자가 결국 벗은 몸을 요구하게 되자 임신했음을 고백한 여자는 아이를 낳기 위해 사라진다.

 동명의 원작 연극 <M. 버터플라이>는 1988년에 알려진 북경 주재 프랑스 외교관 베르나르 부리스코와 경극 배우 스페이푸의 '실화'에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티브를 더해 만들어졌다. 연극・뮤지컬계의 골든글로브상이라 불리는 '토니상' 최우수 연극 작품상을 수상한 뒤에 영화화됐다.


 위에 영화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오리엔탈리즘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활용해서 위기를 모면하고 문제를 회피한다. 그게 동양인의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할지라도 송 릴링은 그것을 영악하게 사용한다.


 이 이야기는 오리엔탈리즘뿐만 아니라 깊게 자리 잡은 다른 생각 또한 반전시키고 전복시켜, 일종의 정신적 패배감을 자아내는 신기한 영화이다.

 정말 이 영화가 딱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엔딩 크레딧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와, 한 음절 외에는 내뱉지 못하고 정말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두 번째 영화,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메인 예고편 (01:30) https://youtu.be/FmdoNuwrgu8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 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을린 사랑>은 우리에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컨택트>로 알려진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0년 연출작이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려와 극이 진행된다. 엄마 나왈의 유언으로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이 과거 엄마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을 그렸다.


 예고편에서도 설명돼있듯이, <그을린 사랑>은 역사 속에서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이 끌고 온 결과를 가감 없이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도 지지 않았던 진한 모성애와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차분히 두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언어 속에서 점점 밝혀지는 진실을 마주하는 그 모습이, 보는 사람까지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엄마의 눈물겨운 인생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어 진다.

 이 영화 역시, 엔딩 끝에 몰려오는 충격을 쉽게 가눌 수 없을 만큼 임팩트가 크다. 어쩜 그리 인생이 얄궂은지 참 한숨밖에 쉬어지지 않는 놀라운 영화이다.





 세 번째 영화,

마이클 피어스리그, 피터 피어스리그 감독의 <타임 패러독스>


메인 예고편 (01:20) https://tv.naver.com/v/248599

뉴욕을 초토화시킨 폭파 사건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다. 용의자 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해 범죄 예방 본부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템포럴 요원을 투입한다. 단서1. 템포럴 요원은 피즐 폭파범을 막다가 얼굴을 다쳐 이식 수술을 한다. 단서2. 템포럴 요원은 바텐더로 위장 취업해 존을 만난다. 단서3. 존은, 고아원에서 자라나 우주비행사를 꿈꾸다가 의문의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인생을 망친 소녀 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단서4. 존은 제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단서5. 템포럴 요원은 존을 제인이 의문의 남자를 만나기 바로 직전으로 데리고 간다. 단서6. 템포럴 요원은 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를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타임 패러독스>의 소개글은 마치 일종의 로직게임 같다. 호기심과 해결 욕구를 자극하기에 아주 좋은 마케팅이다.

 실제로 나 또한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와 이 소개글 때문에 이 영화를 관람했으니, 할 말은 다한 듯 싶다.


 <타임 패러독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두 사람 모두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촘촘히 얽혀서 나열되어 있는 구조를 끊임없이 추리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편집과, 후반부로 갈수록 휘몰아치는 전개가 단연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오늘 큐레이션 영화 중에 제일 많은 한국 관객수를 가지고 있는 영화답게 블록버스터급 스케일과 액션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네 번째 영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핑크와 그레이>


메인 예고편 (01:29 한글자막 없음) https://youtu.be/KizBkWDUMPY

인기 영화배우 렝고 시라키가 유서와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됐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것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가장 친한 친구인 다이키 가와다로, 그는 렝고가 누렸던 부와 명성을 꿈꾸는 평범한 배우다. 다이키는 친구의 유서를 토대로 그의 전기를 출간하는데, 이를 통해 다이키는 뜻하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친구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명성으로 괴로워하던 다이키는, 렝고 시라키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핑크와 그레이>는 크게 세 개의 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학창 시절, 렝고가 죽기 전, 렝고가 죽은 뒤. 마치 세 개의 장이 전부 다른 장르를 가지고 있는 듯 아주 다르게 묘사된 점이 재미를 더한다.


 임의로 나눠본 세 개의 장 중 '1장 그들의 학창 시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청춘 영화의 장르를 띄고 있고, '2장 렝고가 죽기 전'은 드라마 장르라고 할 수 있고, '마지막 장 렝고가 죽은 뒤'는 누가 뭐래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이다.

 감독은 전환을 극대화하기 위해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 극단적인 색감과 자극적인 음악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다이키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렝고와 사리 또한 주인공과 다름없다. 세 사람의 관계와 각자의 감정, 그리고 그 변화까지 주목해가며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처음부터 얽히고설켜있는 이야기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큐레이션을 들어가면서도 언급했지만, 네 영화 모두 필히 스포일러 없이 감상하기를 권한다. 작은 디테일도 힌트가 되고, 힌트를 힌트인 줄 모르고 접했을 때의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


 이번 큐레이션은 다소 충격적인 전개와 결말을 가지고 있고 혼돈의 도가니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짜릿한 충격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재미와 흥분을 주는 선택이 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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