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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Sep 27. 2021

회사 다니는 직장인의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여덟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여덟 번째 영화들.


 어쩐지 회사 생활을 그린 드라마는 익숙하다.

 아무래도 회사라는 소재는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알맞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영화들을 보면 그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들을 알지만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 영화들이 회사 생활의 실제보다는 회사 생활의 로망과 소망을 담은 영화라고, 순 가짜라고 배격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이 영화들을 봤으면 좋겠다.


 아래 영화들이 가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는 회사 생활의 로망과 소망 말고 또 다른 것이 있다.


 삶의 목표, 선택과 집중, 나의 동료, 성실과 긍정의 힘 그리고 나만의 신념과 가치.


 이것들은 순 가짜가 아니라 충분히 조명받아 마땅한 것들이니까.





 첫 번째 영화,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인 디 에어>

메인 예고편 (02:25) https://youtu.be/kHI37X8QRn8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아다니며 1년 322일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미국 최고의 베테랑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그의 특기는 완벽한 비행기 여행, 유일한 목표는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 7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 텁텁한 기내 공기와 싸구려 기내식 서비스에 평온함을 느끼고, 모두가 싫어하는 출장 생활이 집보다 훨씬 편하다는 그. 12살 때, 할머니가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사람은 혼자 죽는다’라는 걸 이미 깨달았고, 오지랖 넓은 누나의 잔소리를 용케 피해 가며 여동생의 결혼식에서도 손은 잡아주지 않을 예정이다. 천만 마일리지 달성을 앞둔 어느 날, 온라인 해고 시스템을 개발한 당돌한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등장한다. 만일 이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해고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것은 베테랑 해고 전문가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 결국 라이언은 당돌한 신입직원에게 ‘품위 있는’ 해고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생애 처음 동반 출장을 떠나게 된다. 한편, 라이언은 호텔 라운지에서 자신을 꼭 닮은 여인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난다. 자신처럼 마일리지 카드에 흥분하고, 달라붙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자칭 ‘여자 라이언’이 등장한 것! ‘사람의 눈을 볼 때 상대가 내 영혼을 보듯 고요해지는 느낌’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라이언 빙햄은 알렉스와의 만남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진실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목적지 없이 떠도는 당신의 인생… 괜찮나요?

 단언컨대 <인 디 에어>는 명작 중에 명작이다.


 <인 디 에어>는 찰떡같은 캐스팅, 물 흐르듯 유연하고 빠르게 끌고 가는 전개, 믿고 보는 연기 그리고 뒤통수를 때리는 무언가가 있는 영화다.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과 그 속에 담긴 각자의 이야기.

 각 캐릭터들의 위치와 성향과 논리가 다채로우면서도 모두 납득이 간다.

 베테랑 해고 전문가라는 설정만으로 <인 디 에어>는 신선함과 모순을 모두 가지고 출발한다.


 <인 디 에어>를 설명하는 몇 가지 단어들, '베테랑 해고 전문가, 나의 집, 관계, 삶의 목적'.

 이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두 번째 영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

메인 예고편 (02:23) https://youtu.be/bwylOLy5ir0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이룬 줄스(앤 해서웨이). TPO에 맞는 패션센스, 업무를 위해 사무실에서도 끊임없는 체력관리, 야근하는 직원 챙겨주고, 고객을 위해 박스 포장까지 직접 하는 열정적인 30세 여성 CEO! 한편,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 경험이 무기인 만능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을 인턴으로 채용하게 되는데..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턴>을 보면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달리던 길 옆에 나있던 꽃들과 눈부시게 저물던 노을 그리고 나와 함께 달리고 있던 누군가까지.


 모두 다시 돌이키게 만든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무엇을 위한 길이었는지 다시금 되짚고, 나와 같이 달리던 사람들을 챙기고 또한 나 자신을 돌보고 쉬어가는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





 세 번째 영화,

클레어 스캔론 감독의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 Set it up>

메인 예고편 (02:10) https://youtu.be/hkbV3Zv8Arg

과로와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던 두 명의 비서가 업무 스트레스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로의 상사들을 엮어 사랑하게 만든다는 내용의 영화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는 제목 그대로 로맨틱 코미디다.

 킬링타임용 영화이고 빠른 전개와 재치 있는 대사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또한 이 영화는 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고 매일매일이 힘들고 지겨워도 배울 점이 있는 상사 밑에서 묵묵히 하루를 견디며 사는 두 주인공을 보면,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두 주인공의 고군분투 속에서 나와 내 상사의 모습을 비춰보고, 또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네 번째 영화,

로저 미첼 감독의 <굿모닝 에브리원 morning glory>

메인 예고편 (02:06) https://youtu.be/4QyKCokEZXM

지방 방송국 PD였던 베키 풀러는 해고된 뒤 어렵게 메이저 방송국에 취직한다. 하지만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은 시청률 최저의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 베키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전설의 앵커 마이크 포메로이를 영입하지만 그것은 일생일대 최악의 선택이 되고 이로 인해 새로 시작된 사랑도 위기에 빠지는데…

 절실하게 가고 싶은 회사가 있다.

 이 회사에 입사만 한다면 이 회사에 헌신할 것이라 장담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는 내가 꿈꾸던 이상 따윈 개나 준 그런 곳이었다.


 그 비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했는데, 그 문은 오히려 쉬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 막히는 곳.

 그런 곳이 회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것들이니 온전히 내가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


 유튜버 밀라논나 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하신 '성실은 내 인생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르게 하는 영화다.





 다섯 번째 영화,

데이빗 프랭클 감독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메인 예고편 (01:25) https://tv.naver.com/v/1589711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기적 같이 입사했지만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에겐 이 화려한 세계가 그저 낯설기만 하다. 원래의 꿈인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딱 1년만 버티기로 결심하지만 악마 같은 보스,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와 일하는 것은 정말 지옥 같은데…!! 24시간 울려대는 휴대폰, 남자 친구 생일도 챙기지 못할 정도의 풀 야근, 심지어 그녀의 쌍둥이 방학 숙제까지! 꿈과는 점점 멀어지고.. 잡일 전문 쭈구리 비서가 된 '앤드리아' 오늘도 ‘미란다’의 칼 같은 질타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고군분투하는 ‘앤드리아’ 과연, 전쟁 같은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익숙한 영화일 것이다.

 오피스물의 교과서 같은 영화랄까.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가 막히게 선명한 캐릭터와 찰떡같은 연기, 짜릿한 패션계의 모습들 그리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사건과 감정.


 두 주인공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이 극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짙어지고 무거워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면,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봤을 때 느껴지는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테니.





 회사를 다닌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매일 새장의 새처럼 갇혀 있으니 같은 새장 안에 새들의 온갖 안 좋은 꼴은 다 보게 되는 것 같고, '나는 그들처럼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나도 어찌 됐건 같은 새장 안에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 간단한 사실에서 오는 막막함과 비전 없는 미래가 나를 미치게 한다.

 회사생활은 각박하고, 주 5일을 9 to 6로 일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어디선가 들었던 '올해가 근속 27년'이라는 얘기는 이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이 기회를 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나에서 일을 빼면 무엇이 남는지, 일이 내 인생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일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하는 것들 말이다.


 나도 모르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 회사에 과연 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고민들을 해 봤으면 좋겠다.


 내 삶을 끌고 나아가는 것은 오직 '나'다.


 다른 사람의 삶의 부품처럼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핸들을 잡고 달려야 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의 말을 되새기며 이 큐레이션을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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