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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Oct 23. 2021

멜로지만, 한끗 다른 영화들

 영화 큐레이션하지 - 아홉 번째 영화들

스포일러 없는 김하지만의 특별한 영화 큐레이션, 그 아홉 번째 영화들.


 나는 멜로 장르를 좋아한다. 로맨스도 좋아한다.

 멜로와 로맨스 두 장르가 비슷한 느낌이지만 약간 다른 의미를 띠고 있다.


 멜로mellow는 '부드럽고 그윽한, 온화한, 은은한, 달콤한,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고,

 로맨스romance는 '(보통 짧은)연애/로맨스, 연애감정, 설렘'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비교해보면 멜로는 조금 더 은은하고 두툼한 느낌이고, 로맨스는 조금 더 산뜻하고 간질한 느낌이다.


 멜로와 로맨스 모두 좋지만 오늘 소개하고 싶은 영화들은 기존에 늘 봐오던 로맨스 영화들과 달리, 조금 더 몽글하고 아리까리한 영화들이다.


 제목에서의 '한끗 다름'은 이 영화들이 그저 멜로,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시사하는 점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각 영화들 사랑이라는 감정을 빌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곱씹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첫 번째 영화,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메인 예고편 (01:38) https://youtu.be/QssT21ffrhk

결혼 5년 차인 프리랜서 작가 마고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루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일로 떠난 여행길에서 그녀는 우연히 대니얼을 알게 되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대니얼이 바로 앞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마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커져만 가는 대니얼에 대한 마음과 남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삶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나는 불륜을 정당화하는 영화를 혐오한다.


 나는 불륜이라는 행위가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인격을 살인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도 사랑일까>는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큐레이션으로 가지고 온 이유는, <우리도 사랑일까>는 그저 불륜을 전시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짝거림이 가진 매혹과 반짝거림을 향한 질투.

 이미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익숙함과 당연함 그리고 권태, 뒤늦게 깨닫는 소중함.

 영화 속에서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결국 <우리도 사랑일까>는 이 감정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도 사랑일까>를 다시 보면서 문득 레드벨벳의 '피카부' 가사가 떠올랐다.

새 것만 좋아해요 반짝거리죠
다들 그렇잖아요 맞죠?
Peek-A-Boo
설렐 때만 사랑이니까

그냥 흘려들었던 노래 가사가 무겁게 또 다르게 들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우리도 사랑일까>는 캐나다 토론토를 아주 진득하게 담아낸 영화다. 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공기, 감정까지 담아내서 아주 흠뻑 토론토를 즐길 수 있다.





 두 번째 영화,

제임스 켄트 감독의 <청춘의 증언>

메인 예고편 (01:48) https://youtu.be/nbF9sffMHVo

작가를 꿈꾸는 베라는 결혼을 권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옥스포드 입학 준비를 한다. 든든한 지원군인 동생 에드워드, 베라를 짝사랑하는 빅터, 함께 문학의 길을 꿈꾸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롤랜드까지 네 사람은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마침내 베라는 꿈에 그리던 옥스포드 입학 허가를 받게 되고 이들의 우정과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데… 캠퍼스 생활을 눈앞에 두고 한껏 들떠있던 어느 날,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에드워드와 빅터 그리고 연인인 롤랜드까지 자원해 전쟁터로 향한다. 베라는 그들 가까이에서 힘이 돼주기 위해 옥스포드를 포기하고 간호사로 자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수많은 젊은 청춘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전쟁의 실상과 마주하게 되는데…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청춘의 증언' 이라는 말이 주는 궁금함과 묘한 기대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영화가 내가 기대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 기대가 얼마나 가볍고 순진했는지 몸소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


 <청춘의 증언>은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실화 바탕의 영화이다.

 초반부와 후반부가 가이 다른 장르라고 해도 될 만큼, 화면의 색감과 들리는 소리들, 촬영 방식, 편집 속도가 급변한다.


 내가 <청춘의 증언>을 사랑하는 이유는 화면의 아름다움, 극 초반에 나오는 글들의 서정성, 닿을 듯 말 듯 아슬한 감정들도 있지만,

 결국 <청춘의 증언>을 추천하게 만든 것은 이 영화가 가진 강직함이다.


 묵직한 외침이자 눈물 어린 호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나갔기에, 또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여서 더욱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영화이다.





 세 번째 영화,

청펀펀 감독의 <청설Hear Me>

메인 예고편 (02:01) https://youtu.be/SAmXV39xaCg

손으로 말하는 ‘양양’과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티엔커’ 마음이 듣고 가슴으로 느낀 두 남녀의 떨리는 연애 스토리를 담은 대만 첫사랑 로맨스 그 시작

 <청설>은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다. 풋풋하고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따듯하다.


 <청설>이 주는 따듯함은 우리가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배려와 약자를 향한 관심 어린 따듯함이다.

 이성 간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자매간의 사랑 역시 느낄 수 있고, 약자를 가두는 편견차별 그리고 우리가 약자라 일컫는 그들의 삶과 디테일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청설>은 대만 로맨스 영화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출연진 역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천옌시가 여자 주인공의 언니로 출연하며,

 대만의 송중기라 불리는 펑위옌, 류이호 출연작으로 알려진 <모어 댄 블루>의 천이한이 주인공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만 로맨스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얼굴들이 나와 반가움을 자아낸다.





 네 번째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메인 예고편 (02:30) https://youtu.be/XB8HgiB5Ehk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일하는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의 곁에는 수다스럽지만 믿음직한 동료 젤다와 서로를 보살펴주는 가난한 이웃집 화가 자일스가 있다. 어느 날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오고, 엘라이자는 신비로운 그에게 이끌려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음악을 함께 들으며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목격한 호프 스테들러 박사는 그 생명체에게 지능 및 공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실험실의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그를 해부하여 우주 개발에 이용하려 한다. 이에 엘라이자는 그를 탈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는 <판의 미로>와 <퍼시픽 림>으로 유명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이다.

 <크림슨 피크>까지 합하면 그의 연출작들이 가진 분위기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셰이프 오브 워터>는 멜가 가득 풍겨 나오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위에 소개한 <청설>과 더불어 약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주인공이 가진 아픔과 한계가 극명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더욱 깊어진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라던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와 같은 대사들 보면 <셰이프 오브 워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셰이프 오브 워터>를 사랑하는 이유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깔려있는 시적인 분위기와 마지막에 정말로 등장하는 시 구절이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It humbles my heart,
For You are everywhere..."

당신의 형태를 가늠할 순 없지만,
나는 어디서든 당신을 찾을 수 있네.
당신의 존재가
당신의 사랑으로 나의 눈을 채우고,
내 마음을 겸허하게 만드네,
당신이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가 왜 등장하는지는 <셰이프 오브 워터>를 모두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 감정이던 사치인 것 같고, 삶이 퍽퍽하고 메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감정이던 느낄 수 있고, 우리에게 사치스러운 감정은 없다.


 위 영화들을 보고, 점점 차가워지고 멀어지는 듯한 세상과 관계들 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온정 어린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조금의 숨 쉴 틈,

 나도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조금의 기대감,

 그래도 지금이 최악은 아니라는 조금의 희망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된, 가슴에 깊이 남아버린 김은주 작가의 문장으로 이번 큐레이션을 마무리하고 싶다.


상처는 깃털처럼 날리고,
가슴에 사랑만을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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