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se7en, 1995
은퇴 7일 전 베테랑 형사 _ 윌리엄 서머셋
그는 정갈하고 깔끔하며 꼼꼼한 사람이다. 재킷에 묻은 한 올의 먼지도 넘어가지 않는 그는, 작은 펜과 손수건부터 총까지 매일 의식처럼 챙겨야 할 물품들을 재킷 안 주머니에 넣고 출근한다. 옷을 입을 때 또한 내의, 외의 할 것 없이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는, 어찌 보면 답답한 사람일 것이다. 언행을 보면 단호함과 냉철함이 느껴지면서도 인간애와 배려가 스며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인이 남편을 찔러 죽인 사건 현장에서도 '아이가 봤나?'라고 질문을 하는 것, 도서관을 지키는 경비들에게 "지식의 세계에 휩싸여서 뭐 하는 겁니까, 카드게임이나 하고."라고 말하는 것, 밀스에게 실낙원과 초오서를 복사해 전달하며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면 그만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식사초대를 권하는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의 전화에 정중히 거절을 하다가도 적당히 수락할 줄도 아는 모습은 그의 사려 깊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임신을 한 트레이시가 그에게 조언을 구할 때의 그의 대사를 보자. "결혼과 다름없는 연애를 한 사람이 있었죠. 임신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어요.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었죠. 이런 세상에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어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겠어요. ... 그래서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어요." 세상에 대한 불신과 비관, 그리고 아버지가 되는 두려움이 혼재되어있다. 그는 그런 그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조언을 얻고자 하는 트레이시를 위해 트레이시의 미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언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범인을 보고 '그런 새끼는 미친놈'이라고 말해대는 밀스에게 "그는 미친 사람이 아냐, 그런 실수는 하지 말게."라고 말하는 그는 범인이라고 얕잡아 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차분히 범인의 사건 기록을 읊는다. 그는 영장 없이는 절대 용의자의 집을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아 철저히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보이나,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비밀스레 FBI에 정보를 요청하거나 사건 현장에 있던 그림의 뒷면을 칼로 찢어 열어보는 대담함, 벽에 찍힌 지문을 찾아내는 관찰력 그리고 은퇴일이 되자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을 잡을 때까지 며칠만 더 밀스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말로 표현되는 집요함 등은 그가 뼈 속까지 형사임을 반증한다.
술집에서 밀스와 나눈 대화에서 그는 무관심이 이 사회의 문제라고 말하며, 이미 이 사회에 대한 평가를 마친 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겪은 그가 어디로 갈 거냐는 경감의 질문에 근처에 있겠다고 답하는 모습에서 그는 그 스스로 이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벗어나서는 안됨을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멋진 곳이고,
싸워서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후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패기의 신참 형사 _ 데이빗 밀스
출근 첫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등장한 그는, 턱을 치켜세우며 자기소개를 한다. 그토록 원하던 곳으로 전근 온 것에 퍽 신나 보인다. 현란한 무늬의 넥타이, 풀어헤친 재킷, 느근한 바지춤이 그의 성격을 설명하는 듯하다. 첫 번째 살해 현장에서 자신의 옛 사건기록을 읊는 모습과, 피해자의 토사물을 보고 헛구역질을 하는 그에게 혈흔이 있냐고 묻는 서머셋의 질문에 "궁금하면 알아서 보세요"라고 답하는 모습 그리고 피해자의 사체 이마에서 발견된 총구 자국을 보고 '신사숙녀 여러분, 살인사건이군요.'라고 말하는 장난스러운 말투는 그가 철이 없고 이 사건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웃주민을 탐문하라는 서머셋의 요청에 "뭐라고요?"라고 재문 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모습, 서머셋이 경감에게 이 사건은 밀스에게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격분에 차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 욕이 난무하는 말버릇 등을 보면 그가 말과 행동을 가리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미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의 모습들과는 다르게 그는, 그의 아내 트레이시가 깨지 않게 조심하는 태도, 트레이시에게 마지못해 늘 지는 모습, 술집에서 서머셋과의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트레이시를 꼭 껴안는 모습 등이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트레이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느낄 수 있다.
또한, 밀스가 추천한 도서의 부분을 모두 읽어보려는 태도와 피해자의 부인에게 범인을 꼭 잡겠다고 한 말, 그것이 매우 진심이라는 점, 안 그러면 왜 이 고생을 하냐는 반문, 동료가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처음 총을 쐈다는 이야기, 그 동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괴로워하는 모습, 팔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범인을 끈질기게 쫒아가는 점, 범인을 잡아서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말하는 부분들은 그가 범인을 체포하는 데에 있어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가졌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된 지 알 수 있다.
술집에서 서머셋이 밀스에게 "자네는 영웅이 되고 싶겠지만 사람들은 그런 거에 관심 없어", "나는 무관심이 미덕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사랑하려면 값을 치러야 하네, 사랑은 노력이 필요하고 공을 들여야 해."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선배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문제라고 하셨죠. 그럼 저도 무관심한 거겠네요.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돼요. 왜인 줄 아세요? (자네는 관심이 있나?) 당연하죠.", "어쨌든 저는, 선배가 아까 한 얘기 때문에 은퇴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엔 은퇴하고 싶어서 그렇게 믿고 싶은 거뿐이에요. 선배는 제가 선배가 옳다고 말해주길 바라죠? 다 엉망이라고 모두 떠나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전 안 할 겁니다. 그렇게 말 안 할 거예요. 선배 말에 동의 안 해요, 절대. 전 못해요."
이 대사가 밀스의 직업에 대한 신념과 정의감을 확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선배 말에 동의 안 해요, 절대.
전 못해요.
감독 _ 데이빗 핀쳐
마돈나의 보그(https://youtu.be/GuJQSAiODqI)를 비롯해 다수의 뮤직비디오와 CF 감독으로 활약하던 데이빗 핀쳐는 92년도 <에일리언 3>으로 영화감독 데뷔 신고식을 치른다. 그 뒤로 찍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세븐>이다. 그의 진정한 데뷔작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그가 영화로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적확하게 설명해주는 영화일 것이다. 그는 이 <세븐>을 시작으로 <파이트 클럽>, <조디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나를 찾아줘> 등의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그가 만들어낸 일련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를 향한 그의 집요함과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희대의 살인마로 등장하는 '케빈 스페이시'가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정보는 개봉 당시 영화 포스터는 물론이고 모든 홍보 일정 속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은 오직 영화를 모두 관람한 후에 볼 수 있는 엔딩 크레딧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서사에서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케빈 스페이시 등장의 놀라움이 반감되지 않게 하려는 제작진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꼽고 싶은 놀라운 점은 편집과 미술이다.
워낙 오프닝 시퀀스로 유명한 감독이기에 가타부타한 설명은 불필요한 듯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k2gsEI34CE [세븐 오프닝 시퀀스]
이 오프닝 시퀀스는 극 중 범인의 편집증적 순간들을 짜깁기해놓은 것이다. 범인의 날짜 없는 일기, 지문을 없앤 손가락, 범행 계획, 피해자의 사진 등으로 구성된 이 시퀀스는, 영화를 보지 않고 이 부분만 보더라도 한 편의 뮤직비디오나 단편 실험영화를 본 듯한 느낌까지 준다.
7대 죄악을 표현한 각 살해 현장들, 서머셋과 밀스의 사무실, 범인의 아파트 복도와 집 내부,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살해 현장까지. 각 장면들의 카메라의 구도와 인물의 배치, 세밀하게 선택된 소품들과 채도가 낮은 색감의 사용, 중첩된 이미지들이 어우러져 영화 속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완벽히 형성해주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에 시기적절한 음악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빚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관객 _ 민감한 고슴도치
나는 이 영화를 과장 섞어 스무 번은 봤을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확실히 기억한다. 아주 대단한 명작을 봐버렸다. 정확히 이 문장으로 표현되는 감정이었다. 나는 소위 말해 데이빗 핀쳐 감독 영화의 덕후이다. <세븐>이라는 이 작품은 내가 영광스럽게 덕후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입덕작이라고 하겠다.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피트, 케빈 스페이시의 찰떡 캐스팅도 소름 끼치는 호연도 모두 돋보이는, 말 그대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밀스 형사에 이입하면서 봤다. 불 같은 성미에 늘 한 부분을 놓치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뜨거움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 결국 그는 범인의 마지막 피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죽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서머셋과 밀스를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 세상에는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과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만 있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올라오는 기분이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만 있는 세상이라면 이 세상은 범죄로 가득 차겠지. 결국 세상에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놈의 균형이란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감탄한 것은 이 영화는 세월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95년도 작품이라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년이나 올해 초에 나온 듯 세련된 느낌이 다분하다. 흠을 찾자면 전자기기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연출의 우아함, 시간을 초월한 미술의 아름다움, 흠을 찾을 수 없는 월드 클래스 배우들의 호연이, 매일 매년 갱신되는 영화계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적어도 두 번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는 반전을 알고 봐도 재밌고, 반전을 알고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복습하기에 아주 적절한 좋은 영화이다,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