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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a Dec 29. 2024

휘청거리는 오후 | 박완서 사랑, 결혼, 가족

박완서 소설가의 사랑, 결혼, 가족

낭만적 사랑과 현실적 결혼에 대한 이야기



휘청거리는 오후, 아버지인 허성이 세 딸을 결혼시키다 가족이 휘청거리다 못해 결국 무너져버리고 마는 인생 이야기이다. 


첫 느낌


박완서 작가의 책은 웬만한 건 다 읽었다 생각했는데 읽지 못한 책을 만나 바로 첫 장을 폈다. 


신문 연재로 시작한 소설이라는데 이렇게 책장을 놓을 수 없이 읽히는 소설을 신문으로 어떻게 기다리고 읽었을지 그 당시 독자들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나는 이미 완료된 연재를 다 묶어서 쉬지 않고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전체적인 책의 구성 및 줄거리 


 맞선, 파탄, 연애, 광장, 만추, 밀원, 환절, 응석, 적요. 이렇게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희, 우희, 말희 세 딸을 결혼시키는 내용으로 전개되는데 시작이 초희의 맞선을 위해 아버지인 허성이 목욕재계를 하고 나오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랑보다는 부유한 물질적 안정을 추구하는 목표로 결혼을 하고자 하는 큰 딸 초희, 낭만적 사랑을 증명하고자 하나 가부장제와 찌든 가난에 파묻히고 마는 둘째 우희, 사랑과 본인의 능력을 모두 겸비해 정상적인 결혼을 하는 것 같이 보였으나 결국 위태위태하던 아빠를 죽음으로 몰게 되는 막내 말희의 결혼 과정 이야기이다. 



가부장제를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한 초희는 약물 중독으로 망가지고, 아버지의 희생을 당연시 한 우희는 남편과 시댁의 권위에 짓눌리고 가난한 집의 노예처럼 부려지는 초라한 며느리가 되고, 정상적이고 순수한 연애를 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 말희는 아버지를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이 소설에서 결혼을 둘러싼 
일년의 과정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영역과
결혼을 통해 구성되는 
가족의 가치가 
순수함과 친밀한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잃고 교환가치의 척도에 
훼손된 상황을 보여준다 

송은영 문화평론가 작품해설





마음에 남는 구절 


왜 서구식 자유연애는 한 주제에 어째서 서구식 자주독립은 회피하려 드는가. 왜 성의 자유는 누린 주제에, 어째서 생활의 자유는 누리기를 겁을 내는가. 거기에 따르는 어려움이 싫다고 젊은것들이 비굴하게 구걸을 해? 그들은 제법 듣기 좋은 말로 부모에게 구걸하는 품목을 당장은 '이해'니 '축복'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국한시키고 있지만, 결국은 부모의 물질적인 도움일 것이다. 


자식들이 자라서 부모 슬하를 훨훨 떠나게 되는 건 이성과 합쳐지고 싶다는 내적인 욕구 때문도 있겠지만 부모 자식 간의 애정의 파탄도 한몫 거드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건 이성과 합쳐지겠다는 욕구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건지도 몰라. 


순결을 잃은 딸 앞에서 부들부들 치를 떨 때도 그랬지만 화가 가라앉자마자 깨진 그릇은 깨뜨린 놈한테 혹하게 하는 게 수라는 상식적이고도 안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아버지의 전통적인 무사안일주의에 우희는 구역질을 느꼈다. 




책장을 덮으며 


초희와 우희의 결혼이 보여주는 것은, 결혼이 남성과 여성의 감정적 교류를 통한 일대일 결합이나 친밀성에 근거한 새로운 유대관계의 형성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결혼은 사회구조적 상황,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구성되는 또 다른 권력관계에 가깝다.

송은영 문화평론가 작품해설


1977년 거의 50년 전에 쓰인 책인데, 지금과 크게 차이 없다고 느껴진다.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남성들은 이해를 못 하겠다며 여성 혐오주의가 생기기도, 남성과 여성의 극한 대립으로 가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약간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휘청거리는 오후'나, '82년생 김지영'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 체제의 문제점과 여성들의 한정적인 기회와 제약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부분이 변화되었다고 느끼다가도 높디높은 벽을 만나는 순간 또 포기하게 된다. 박완서 작가님도 그런 답답한 마음을 이런 글과 함께 사회에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딸들은 '휘청거리는 오후'나, '82년생 김지영'을 이해 못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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