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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참 대단하다.

칭찬처럼 들리는 통제

by Erica

“넌 참 대단하다.”


그 말을 처음 들은 건, 첫 아이를 낳고 한 달도 안 되어 복직했을 때였다.
출산 전 25kg이나 불었던 몸은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고,
결혼 전 입던 정장을 다시 꺼내 말끔히 차려입은 채 회사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동료가 내게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웃었다.
운동을 해서 돌아온 몸이 아니라,
하루 세 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없던 나날의 결과였다.
신생아의 울음과 수면 부족, 피로에 절은 몸으로 간신히 버티며 웃었다.
‘그래, 난 대단한 사람이야.’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고,
당시 대부분의 여성이 출산과 동시에 퇴사하던 시절에 복직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퇴근 후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밥을 하고, 아이를 재우고, 집안을 치우고,
내일의 이유식과 남편의 식사를 준비했다.
밤 한 시가 넘어설 무렵이면,
‘오늘도 잘 해냈다’는 말 대신
‘다섯 시간만이라도 연달아 잘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런데 누구도 내게 ‘도움을 청해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넌 정말 대단해.”


어느 날, 남편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대학 선배가 쓴 책인데, 읽어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쓴 책이었다.
하루 세 시간도 채 못 자며 버티는 내게
‘더 나아가라’는 채찍처럼 느껴졌다.
그는 아마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더 대단해져야 사랑받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 괜찮은 여자가 될 수 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끝없는 트랙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앞에는 아기가 든 애기띠,
등에는 노트북, 어깨엔 장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트랙 위의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외쳤다.
“넌 정말 대단해! 계속 달려!”

숨이 차서 멈추려 했지만,
멈치는 순간 사람들의 손뼉이 멎을 것 같았다.
‘대단한 척하지만, 너도 별 수 없구나’
그 비웃음이 두려워 죽을 듯이 달렸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마, 사랑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더 잘하려고 애쓴 시간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자만이
결국 나를 더 깊은 굴레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이제 나는 ‘대단한 사람’ 대신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끼쯤은 라면을 끓여 먹어도,
집안이 조금 어질러져도,
하루가 어지럽게 흘러가도 괜찮다.

“괜찮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숨 쉬게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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