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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Feb 28. 2022

10. 도시공화국의 새로운 전장, 스마트시티 표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미국 보스턴미술관에는 폴 고갱(Paul Gauguin)의 마지막 유작이 전시되어 있다. 어딘지 차갑고  정치적인 묵직함이 느껴지는 도시 분위기와 맞지 않은 이 그림은 고갱이 파란만장했던 파리생활을 뒤로 하고, 자신의 혼혈 인종 뿌리를 찾아 간 타이티 섬에서  말년에 그린 역작이다. 캔버스의 왼쪽 위 구석에 써 놓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라는 그림의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이 그림은 다시 보게 된 것은 작년 12월에 작고한 통섭의 과학자 Edward Wilson의 쓴 <지구의 정복자> 책표지에서 였다. 윌슨 역시 사회생물학자 분야에서 한때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끈질김으로 일가를 개척하였다. 그가 마지막에 도달한 깨달음 역시 이 질문에 도달하며 멈추었다. 포항공대 물리학과 정우성 교수는 이런 질문들 사이에  ‘우리는 어떻게 모여사는가?’라는 물음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이 질문이 훨씬 도시에 가깝다.
 나는 전쟁과 전염병 같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만날 때, 어떤 연유에서 기인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마음이 수만가지 파편으로 흩어질 때, 대규모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무의미한 움직임을 느낄 때 이 그림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들처럼 물어 본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ere Are We Going?)’. 그리고 이 선형적 흐름위에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What Are We?)’를 묻는다.  우리는 왜 모여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날 디지털로 무장한 똑똑한 사람들이 도시에 몰리면서 높은 삶의 질과 더 높은 편의성을 도시에 요구한다. 도시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초정밀 센서들로 무장한 영리한 도시기능과 함께 더 높은 민주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현대 도시는 그속에 살아가는 개인 삶의 질과 성장토대를  어떻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판가름된다. 허브 구조가 가지는 치명적 약점, 즉 자그마한 나비 날개짓 하나로 일순간에 시스템 전체를 붕괴될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도시관리자들은 더 촘촘한 감시망을 원하며, 자유에 대한 시민의 갈망은 다원화되고 저항이 흩어진다(사실 우리는 백지상태의 무제한 자유를 주면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면서도 그런 자유를 갈망한다. 도시는 개인 욕망의 총화이면서 모든 문제의 원초다). 이 틈새가 어쩌면 표준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표준을 사이에 두고 시민의 질주하는 욕망과 도시의 리더들의 통치가 서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도시는 인류가 자연과 투쟁하며 획득한 문명의 상징이다. 고대 왕권국가시대부터 정치경제의 중심역할을 수행한 도시는 산업혁명시기를 통과하며 그 중요성이 극대화 되었다. 팽창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이 고스란히 반영하는 ‘대도시의 죽음’들이 이어지며 주춤하던 20세기 초반의 도시발전은 21세기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어 스마트시티란 이름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2050년 세계인구의 80%가 도시에 모여 살 것으로 예측된다. 80억 인구의 군집분포는 비대칭으로 심화된다. 북반구 국가들의 전체 인구는 축소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도시 군집성은 강화된다. 도시들은 인구 질량을 늘리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메가시티를 지향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리차드 볼드윈(Richard Baldwin)은 그의 저서 <Factory Free Economy(2017)>에서 ‘20세기 공장이 하던 일을 21세기 도시가 수행’하면서 도시공화국간 새로운 형태의 경쟁을 예고하였다. 바야흐로 세계는 국가경쟁시대에서 도시경쟁시대로 진입했다. 도시 경쟁은 총칼을 든 영토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높은 지속가능한 스마트시티에 부합한가로 경쟁한다. 유럽의 축구리그처럼 스마트시티 표준인증이 개별 도시간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대도시의 죽음과 삶, 1961>

 스마트시티 표준은 왜 중요한가.

스마트시티 표준은 최적 수준의 도시 성취를 위해 공통적이고 반복적인 사용할 수 있는 토대(규칙, 지침, 지표, 문서)이기에, 도시경쟁에서 공정한 기준 잣대를 제공할 수 있다. 도시는 몸집을 불리기 위해 도시매력을 나타내는 상징이 필요하다. 개별 도시들이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도시매력도를 보여주는 표준화 경쟁에 기꺼이 참전한다. <축적의 시간>의 공동저자인 서울대 이정동교수가 “표준을 주도하는 국가가 기술 선도국”이라고 말한 것처럼, 표준을 주도하는 도시가 스마트시티 선도도시다. 특히 스마트시티 표준은 여타의 다른 표준지표와 달리 확장되는 스마트시티 개념을 계속 반영하며 진화하는 특징이 있어,  개별 도시가 이러한 표준 승인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성숙한 도시라는 명예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주기적으로 도시는 “같이 따로”를 경쟁하는 다른 도시들과 지표를 두고 상대적으로 비교(benchmark)하면서 도시의 매력도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도시가 자기들끼리 잘한다고 자비를 들여 언론에 아무리 홍보해도 무슨 소용 있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찻잔 속에 태풍일 뿐이다. 그렇게 때문에 도시 기능을 지능화하고 시민중심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스마트시티들이 외부자 시선에서 매력 있는 도시라는 승인을 얻기 위해 표준경쟁이 기꺼이 참여한다.

     

 스마트시티가 표준과 인증제도로 경쟁하는 법

  이러한 추세를 자연스럽게 반영하여 세계표준화기구뿐만 아니라 민간연구소, 글로벌 기업까지 앞다투어 표준 지표생성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도시의 매력도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지표를 만들고, 표준화하는 것은 커다란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하나의 시장이 되었다. 도시가 스마트시티 성숙도를 객관적으로 획득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스마트시티 어워드(Awards)가 있다. 마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경쟁 참가 도시들이 주최자가 정한 수상기준지표에 맞추어 신청을 하면 공개투표와 위원회 평가로 수상도시를 선정한다. 스마트시티 아시아 퍼시픽 어워드(IDC), 바르셀로나 월드 스마트시티 어워드(WSEC), 우리나라가 의장국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어워즈(WeGO)가 대표적이다.

IDC 아시아태평양 어워드를 세번 수상한 대구

  둘째는 국제기구나 민간 기관의 인덱스 조사에서 높은 지표를 획득하는 방법이다. 평가하는 주체에 따라 강조하는 지표가 조금씩 다르다. 도시전력 인덱스(모리재단), 살기 좋은 도시지표(EIU), 스마트시티인덱스(이지팍크그룹), 지속가능 인덱스(FG-SSC), 유럽스마트도시지표(EU), 영국스마트시티지표(하웨이), 한국 스마트도시인증제(국토부) 등 다양한 지표들이 있다. IMD 세계경쟁력센터, 연세대 디지털전환기술경영센터, CISCO, IBM, 에릭슨 등 민간기관에서도 지표를 개발하여 도시순위를 매긴다.

IMD의 Smart City Index 순위 (2021)

  셋째는 스마트시티 국제표준 인증을 받아 공신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2016년부터 세계 표준화 기구들이 스마트시티 표준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ISO(국제표준화기구), 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 ITU(국제전기통신연합)는 2013년부터 스마트시티 표준화 추진을 위한 사전 준비를 진행해 왔으며,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2016년부터 4개의 국제표준화 그룹이 신설 또는 역할 조정되어 스마트시티 분야 국제표준을 개발해오고 있다. 국제표준화 기구에서 표준을 제정하면 개별 도시들을 대상으로 평가업무를 대행하는 BSI(ISO), U4SSC(ITU-T) 같은 기관들이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세계 표준기구들의 스마트시티 표준화 움직임

  모두 상이해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 에너지, 교통, 지속가능성 등 당대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미래지향적 스마트시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기술적 발전궤도를 계속 반영하며 지표화 한다는 점이다. 둘째로 스마트시티 구현에 필요한 운영 거버넌스,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사회경제적 가치를 지표로 발굴하여 제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민참여를 통한 디지털 민주주의 활동이 스마트시티 거버넌스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지, 시민 중심의 스마트시티 구현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지표를 만들어 도시에 요구한다.

Smart City 표준 프레임워크 (ISO WG11)

 

대구시는 어디까지 왔나?

  대구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스마트시티 표준과 어워드에 참여하며 도시 브랜드를 높여가고 있다. 먼저 국토부가 주관하는 스마트시티 인증제에서 2021년 9월 국내 1호 스마트도인증도시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2020년 1월에는 국제 표준화 기구인 ISO로부터 스마트시티 인증을 받았다. ISO 표준에서 대구시는 스마트시티 인프라 개발·관리, 도시 전체 IT 아키텍처, 스마트 데이터 투자, 도시간 협업 등에서 4레벨을 획득해 다른 스마트시티보다 운영체계와 인프라에서 앞선 점이 인정됐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월요일(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TU-T 국제표준화 심포지움(GSS20, https://gss.itu.int/programme/)에 대구시 정해용경제부시장이 참석하여 스마트시티 표준 도시 가입 승인서를 받는다. 이로써 대구는 ISO와 ITU-T 스마트시티 표준화에 참여하는 국내 최초도시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사례 도시가 된다.

UN/ITU 스마트시티 표준도시 가입 (2022. 2.28, Geneva)
대구의 스마트시티 인덱스 (ITU-T U4SSC)

  대구시는 다보스포럼 G20 스마트시티 얼라인스 멤버로 가입하여 활약하며, IDC에서 개최하는 Smart City Asia Pacific Award에서 최우수 스마트시티로 3번씩이나 선정되었다. 또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과 함께 세계스마트시티 지표 경쟁에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을 위한 인증은 경계해야 한다. 인증을 통해 도시브랜드와 매력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자의 시선과 내부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스마트시티 사이에 괴리감이 없어야 한다. 인증 자체가 스마트시티를 지향하는 도시 리더십과 의지의 표현인 만큼, 시민들이 편리하고 행복한 스마트 도시로 변모하고 있음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시의 이해관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

1. 성공적인 스마트시티 위한 표준의 역할과 도전과제 (2019.5.28, 보안뉴스)

2. 장환영/김걸, 한국의  스마트시티  인증체계  개선  방안  연구 (대한지리학회, 2020)

3. 이정동, 표준을 주도하는 국가가 기술선도국이다 (2021.05.10. 중앙일보)

4. 이정구, 스마트시티의 표준화 동향 (정보통신기획평가원, 2019)

5. 서울, 2021 세계 스마트시티 랭킹 최고 상승 (2021.10.31., 스마트시티투데이)

6. [특별인터뷰]이정훈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2022-02-20, 전자신문)

7. 도시물리학: 우리는 어떻게 모여 사는가? (물리학과 첨단기술, 21년 4월회)

8. 우정현외, 건축가가 바라보는 다양한 도시의 미래 스마트 시티 (물리학과 첨단기술, 21년 4월회)

9. 정우성, 우리는 어떻게  모여사는가 (2021, 대전테크노파크)

10. 대구 스마트시티 인덱스 (ITU’s implementation of the U4SSC KPI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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