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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Jun 18. 2020

그렇게 코펜하겐으로 출발했다.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가구들과 접촉하며 살고 있을까?

그 중 앉아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어디에 앉아있는가?’


공간디자이너인 나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늘 가져온 생각이었고, 나에게 가구 중 특히 ‘의자’는 ‘나의 사적 공간의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북유럽 감성, 휘게 라이프, 북유럽 스타일의 디자인 등등 ‘북유럽’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이미 사람들에게 ‘행복’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북유럽=가구’ 라고 할만큼 과연 ‘Scandinavian Furniture’ 는 무엇이 다를까?

나는 ‘북유럽 가구’란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고 싶었고,


그렇게 코펜하겐으로 출발했다. 나의 의자를 만들기 위해.


뉴욕 유학시절, 계절학기 교환학생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Furniture Design in Scandinavia’과목을 듣기로 결정했다.


건축, 인테리어 · 제품 · 가구 · 패션 · 커뮤니케이션 · 그래픽 · 광고 · 환경 디자인, 화인 아트 등 전세계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북유럽가구를 배우기 위해 모였으며, 두 달 동안 ‘자신의 의자’를 만드는 것이 수업의 목표였다.


학생들은 3그룹으로 나뉘어진다. 분류의 기준은 만들 의자의 재료에 따른다. Solid Wood(원목), Veneer(합판), steel pipe(스틸 파이프) 로 나뉘고 제비 뽑기로 결정된다. 난 다행히 내가 원했던 원목이 선정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배정된다. 선생님들은 처음 디자인 단계부터 최종 제작까지 함께 하게 되고, 각 재료에 따라 전문 선생님이 다르며, 그들은 각자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현업에서 직접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다.


1주일동안 강의를 듣고, 숙제를 하고, 발표를 한다.

북유럽의 역사, 문화, 자연 / 북유럽 가구 역사와 디자인 / 의자의 역사와 디자인과 가구 디자이너들 / 의자의 재료 / 의자의 기능 / 의자의 비용 / 의자의 시장성 / 구조와 결합성 / 건축과 의자 / 공간에서의 의자의 기능에 대해 집중적 강의와 토론을 진행한다.


발표가 끝난 다음날 ‘Furniture Design in Scandinavia Sketch Tour’를 8일 동안 다녀온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의 유명 가구 디자인 회사나 공장, 건축가의 스튜디오, 북유럽의 건축물과 가구디자인 관련 사이트 등을 방문하며 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있다. 바로 Visual Journal(비주얼 저널, 스케치북)을 작성하는 것이다.기행을 하는 동안 각 나라에서 모인 학생들과 함께 건축가, 디자이너, 작품, 배경, 역사, 환경, 관계성 등을 토론하고 현장에 도착해서 잠시 카메라를 넣어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스스로 스케치북을 채워 나가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사이트에서 느낀 부분들을 스케치북에 채워 나가면서 내가 만들 의자의 컨셉을 점점 확고하게 하는 작업이다.


학생들은 충분히 스터디 토론을 하고 사이트에서는 스케치하며자신의 생각을 스케치북에 채워나간다.


스케치 투어를 다녀오면, 본격적으로 의자 만들기의 시작이다. 먼저 내가 정한 의자 컨셉의 시작점과 방향, 그리고 컨셉 발표를 한다.


내가 채운 스케치북을 통해 앞으로 만들 의자의 컨셉을 정한다.


스터디 모델을 만들고, 1:1 스케일의 스케치는 필수, 수많은 스케치와 캐드 도면 후 실제 제작 도면을 출력한다. 그리곤 장비 사용법을 배우고, 이제 4주일 동안 내 의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전에 내가 사용할 재료를 제공받고, 그 재료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교육받고, 더 이상 추가 재료는 제공받지 못한다. 그러니, 나무 컷팅을 할 때도 100번은 더 생각하고 시뮬레이션 한 후 신중하게 제작한다.


사실 내가 두 달 동안 북유럽 가구를 제작하기 위해 온 이곳에서 가장 깜짝 놀란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나의 보편적인 생각에서는 제작하다가 망치면 다시 나무를 새로 받아서 처음부터 작업하거나, 또는 어떻게든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이질적인 재료나 방법을 통해 재 제작 하는 것이었는데, 북유럽의 훈련방법은 나의 보편성과는 상이한 개념이었다.


이것이 북유럽에서 생각하는 기능적, 합리적, 실용적인 가구, 또한 절제된 재료 사용을 위한 정확한 컨셉 운영과 제작 디테일의 추구가 핵심인 것이다.


스터디 모델링, 스케치, 도면 작업 후  만들 의자의 재료인 1600×200×38mm 내 키만한 나무를 제공받는다. 망쳐도 더 이상 재료를 추가로 받지 못한다.


자르고, 조이고, 깍고, 맞추고, 풀 붙이고, 조립하고, 고정시키고, 말리고, 갈아내고, 비누칠하고..하나하나 내 손으로 완성되어 가는 의자를 대하는 마음은 이미 가구가 아닌 ‘나’ 자체인 것이다.


의자 만드는 과정들. 선생님들이 내 의자의 자립성과 안정성에 대해 회의 중. 사실 나도 의자가 세워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의 의자도 완성되었다. 최종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모든 학과들의 최종 결과믈 전시회와 함께 전체 파티를 하고 그렇게 나의 북유럽 의자는 탄생되었다.


최종 프리젠테이션. 전시회와 파티


온전히 북유럽에서 느낀 감정과 만난 사람들, 그리고 자연과 문화를 경험한 디자인 컨셉인 ‘Light & Shadow in the Forest’ 의자는 그렇게 탄생되었고, 지금은 나와 신랑의 부부침실에서 사이드테이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그저 멋쨍이 북유럽 가구를 배워 보자는 것이었다.


북유럽에는 단지 두 달 머물렀지만,

그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이 디자인은 ‘왜’ 시작되었는지,

또한 이렇게 나온 디자인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그저 멋진 북유럽 가구를 위해 이곳 코펜하겐까지 날아온 나에게 큰 교훈을 주는 시간이었다.


코펜하겐에서 만든 내 의자는,

그 후 나의 디자인 방향에도 영향을 줄 만큼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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