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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Mar 13. 2020

걸어서 세계 속으로

나의 또다른 시작

“아, 그래? 이 예배당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쾰른에서 출발하여 전철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끝없는 밀밭길을 40분걸어서, 하루를 온전히 지난 오후 쯤에야 2평 남짓한Bruder-Klaus Feldkapelle(브루더-클라우스 필드 채플)을 마주했을 때 남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다. 다음 이야기를 빨리 들려주지 않으면 금방 투정이라도 부릴 것 같은 얼굴은, 출발하면서부터 ‘왜 그리 멀리 가냐, 그걸 꼭 봐야하냐, 대체 그깟 개인 예배당에 하루를 낭비하고 가는 것이 맞느냐’ 라고 했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 남자, 이 예배당과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네…’ 

나는 미소 짓고 있지만, 나와 함께 같은 마음으로 공간을 느끼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마음이 벅차 오른다.


29살부터 시작된 나의 건축/디자인 기행의 처음은 병산서원을 필두로‘한국고건축기행’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대천, 만리포 해수욕장, 온양온천 등을 다녔고, 무데기로 가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여지없이 경주 불국사와 도투락 월드였다.  24살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던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에서는 가이드가 데려다 주는 장소에서 ‘우와~우와~’를 연신 외치고 카메라 셔터만 누르다 돌아온 기억밖에 없었다. 이윽고 나의 자발적 독립적 여행의 시작은 그 후 20년 이상 단 한가지 목적인 건축과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건축과 디자인기행을 하며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외적, 형태적, 심미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 건축물과 디자인을 누가,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의뢰했는지, 그것이 거기 있어야 하는 배경은 무엇인지, 왜 그 장소여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간안에서 나는 오롯이 사용자가 되어 잠시 눈감고 숨을 쉬어 보는 시간을 가지며 경험한다. 그렇게 스토리를 알고 나면 모든 사물은 더 깊이 들여다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candinavia Sketch Study Tour 중에

‘Furniture Design in Scandinavia Sketch Study Tour’는 내 생애 가장 가슴 떨리는 최고의 여행이었다.

만학도였던 뉴욕유학 시절,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2개월을 머물며 Summer school 할 기회가 있었다. 북유럽 역사, 환경, 건축, 디자인과 가구를 공부하고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의자 한 개를 제작하는 과목이었다. 그 수업 중 핵심은, 8일동안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의 건축, 디자인, 가구 스케치투어를 하는 것이었다. 각 나라에서 모인 34명의 학생들은, 기행을 떠나기 전 사이트 파악과 건축가, 디자이너, 작품, 배경 역사, 환경, 관계성 등을 충분히 토론하였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잠시 카메라를 넣어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그 장소를 스스로 느끼며 각자의 스케치북을 채워 나가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의 힘을 잊을 수 없었고, 8일의 일정이 끝난 후 나에게 남은 스케치북 한 권은 평생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 역할을 하였고, 나만의 진짜 여행을 경험한 것이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건축과 디자인 또는 예술을 공부하는 내 친구들에게 내가 다녀왔던 기행코스를 알려주어 그대로 실행하는 친구들도 생겼고, 2년전 남편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의 같은 코스를 기행하며 이젠 학생이 아닌 가이드로서 (비록 나의 고객은 단 한 명 뿐이었지만) ‘이야기가 있는 북유럽 가구디자인 스케치 기행’을 다시한번 다녀 올 수 있었다.

이젠 내가 경험한 가슴 떨림을, 진정한 건축/디자인기행을 원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내가 시작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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