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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Jul 27. 2020

천만 원이 없어서 책 쓰기를 포기했다

천만 원이 없어서 책 쓰기를 포기했다



‘천만 원 있었으면 등록하게?’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꾸 ‘예스’로 대답하는 걸 보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보다.


책 쓰기 교육을 위한 정규 과정 2개월에 1,000만 원이라고 했다.

2개월을 주 1회 3시간 개별 강의하는데 1,000만 원이라니.

시간당 416,666원이다.

물론 2개월 안에 책 쓰기가 끝나지 않으면 2개월을 더 봐준다고 하고, 1주일에 딱 3시간만 봐주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이메일로 업데이트를 하면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해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2개월에 천만 원이라니...

게다가 정규 등록 전에 1:1 코칭을 하는데 그 비용은 1시간에 20만 원이란다.

변호사 상담비가 1시간에 10만 원인데. 변호사들이 들으면 어려운 고시공부하지 말고 책 쓰기를 할 걸이라는 후회를 했을 거다.

숱한 세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살면서, 한 달 이상을 클라이언트에게 끌려 다니면서 기획, 기본 설계 다 해주고, 도면까지 넘겨주곤 천 원짜리 한 장 받지 못한 적이 수두룩하다.

1시간 면담에 20만 원이라니.

왜 자꾸 울컥하지?

난 여태 뭘 하고 산거야?

갑자기 하룻밤에 오십만 원 하는 고급 펜션한테 욕 했던 게 미안해졌다.



20대 때, KTX가 없었을 땐, 어디라도 갈라 치면 고속버스가 최고이었다.

표 끊고 화장실 들렀다가 음료수랑 삶은 계란 사서 버스에 오른다. 떠나기 5분 전, 팔뚝에 화려한 아트 그리시고 호피 무늬 쫄티 입으신 건장한 2명의 아저씨가 탑승하신다. 그때부터 한 명은 자리마다 번호표를 나눠 주고 또 한 명은 사회를 본다. 사회라기보다는 손님 중에 연세가 있거나, 약간의 호구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눠준 번호를 부른다. 사회자는 느닷없이,

“당첨되셨습니다. 어머니, 축하드립니다!! 이 시계가 원래는 40만 원이 넘는 시계인데 딱 2만 원에 드립니다. 바로 받아 가세요!”

그럼 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웅성, 어떤 시계인지 괜히 궁금해서 기웃거리게 되고, 그 틈을 타서 사회자는 지금 안 받으면 바로 차가 출발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연세 많으신 어머니는 급한 마음에 2만 원을 지불하고 얼른 시계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으면 2명의 아저씨는 사라지고 버스는 바로 출발을 한다.

어찌 그렇게 타이밍은 잘도 맞는지.



6만 원을 주고 4시간짜리 책 쓰기 특강을 먼저 들어봤다. 유익했다. 바로 책을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른 데에 비해 매우 저렴해요. 다른 데는 몇 천만 원이기도 하고 기간도 훨씬 오래 걸리는데, 여긴 딱 2개월 집중 과정입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내가 마치 고속버스에 타고 있는 2만 원짜리에 홀리고 있는 연세 많으신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섬주섬 내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통장에 돈 좀 있었다면, 2만 원짜리 시계 사듯이 천만 원을 주고 등록할 거 같았다.


나에게 10만 원을 아무 이유 없이 10분 안에 선뜻 줄 수 있는 지인을 꼽아봤다.

10만 원 x 100명 = 1,000만 원

100명이 필요했다.

아무리 세어봐도 20명 정도 밖엔 없다. 800만 원이 모자란다.

내 인간관계가 한심해졌다. 십시일반도 안 되겠고…


난 평생 책 쓰기는 글러먹은 인생인가. 대체 요 몇 년 되는 일 하나 없는데, 안 쓰면 죽을 거 같은데, 너무 책 쓰기가 하고 싶은데, 결국 돈이구나. 돈은 없는데…무슨 스무고개 하듯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부터 시작된 멜로디는 결국 느닷없는 ‘백두산’까지 가고 말았다.


나는 아마도 한때 마음껏 디자인하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내가 그리웠나 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는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나만의 무대를 위한 시작이 ‘책 쓰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예전 효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유명해지고 싶지만 조용하게 살고 싶고,

조용하게 살고 싶지만 잊혀지긴 싫다.”

그녀 역시 ‘무대’에 대한 찬란한 영광과 벗어나고 싶다는 두 가지 마음이 늘 공존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천만 원이 없어서 책 쓰기 2개월 강좌를 등록하지는 못했지만,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천만 원보다 더 값진 글들로 엮인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 책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칸에 꽂혀있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오늘도 난 또 하나의 에세이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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