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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Aug 16. 2020

평생 자기 계발을 하는 이유

며칠 전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서점에 들어갔다.

마침 ‘자기 계발’ 코너 앞에 앉게 되었는데, 여행서나 영어 코너보다 더 많은 도서 수량을 가지고 있는 섹션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며 내가 그동안 해온 자기 계발을 생각해보았다.


‘본인의 기술이나 능력을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정규 교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육이 자기 계발이다.


초등교육을 받기 전부터 시작된 나의 자기 계발은 부모에 의한 타의적 계발이었다.

피아노, 미술 등이 그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대부분 자의적인 결정에 의한 자기 계발이었다. 영어는 대표적인 자기 계발이었고, 디자이너의 길을 걸으면서부터 디자인 프로그램의 자기 계발인 캐드, 포토샵, 일러스트, 스케치업 등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빠른 시간에 팀 리더가 되면서 리더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었다. 디자이너의 포지션보다는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었다.

협상과 설득, 넛지 리더십, 마케팅 전략, 성공 리더십. 컨설턴트 실행력, 삼국지 리더십, 포지셔닝, DEO(Design Executive Officer), 철학, 인문고전 등으로 리더십을 공부해 나갔다.


지금 생각하니 애처롭도록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나 보다.


회사에 다니면서 또는 일을 그만두는 공백 기간 중에도 나는 여전히 뭔가를 배우고, 지식을 얻고, 가지고 있는 기술이 녹슬지 않게 지속해서 기름칠을 했었다.

손이 굳지 않게 어반 드로잉을 했었고, 전공인 인테리어 디자인 외 디자인 사용자를 알기 위해 UX/UI 디자인 및 코딩을 배웠다. 다른 분야를 도전해 보기 위해 1인 크리에이터와 이모티콘 디자인 분야로 디자인을 확장했다.

시끄러운 마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명상, 주역, 요가, 보이차, 가드닝을 공부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오랜 시간 동안 요리를 했다. 시중에 파는 막걸리가 맛이 없어서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 전통주 만들기를 배웠다. 평생을 운동과 독서법은 자기 계발의 단골 메뉴였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정신 나간 자기 계발은 39세에 떠난 미국 유학이었다.

당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았었고,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유학 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이니 포기하고 결혼이나 하라고 했었다. 그러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고 떠나지 않으면 미칠 거 같았다. 서른아홉에 다시 시작한 무모한 도전 후 한국에 돌아와서 대기업에 취직도 했었다.


그래서 뭐? 그래서 나에게 남은 건 무엇인가?


어느 날 차곡차곡 적어놓은 버킷 리스트 펼쳤다.

재봉틀로 옷 만들기, 내 손으로 내 집짓기, 건축•디자인 기행 가이드 하기, 내 이름으로 된 책 발행하기, 고양이 키우기, 바리스타 자격증 따기, 한식 조리사 자격증 따기, 친구들과 밴드 만들어서 공연하기, 막걸리 집 운영하기, 벽화 그리기, 한옥 리모델링하기, 게스트 하우스 운영하기, 오토바이로 전국 여행하기, 히말라야 등산하기 등등 수없이 많은 버킷 리스트는

온통 또 배우고 익혀야 될 것들뿐이었다.


자기 계발 책을 찾아보니, 자기 계발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 계발 책이 따로 있을 지경이다. 온통 자기 계발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고, 이것만 하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 할 수 있게끔 이야기해 준다.


무엇이 성공의 의미이고, 그것을 이루면 인생을 잘 살아낸 것일까?
무엇을 위해 배우고 익히고 있는 걸까?


대부분 사람이 자기 계발을 하는 이유는 연봉을 높이고, 좋은 직장을 구하고,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거나,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거나,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 계발은 내 생각처럼 처음과 끝에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 같지 않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른 결말 또는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막걸리를 처음 배울 때 시작의 이유는 단지 시중에 파는 막걸리가 너무 맛이 없어서였다. 

찹쌀 4kg을 100번을 씻고, 12시간 불려 고두밥을 짓는다. 거실에 고두밥을 펼쳐 식히고, 누룩과 물을 섞어 40분을 치댄 후 옹기에 담고 3일을 발열 숙성, 하루를 냉각 숙성, 그리고 또 4주일의 저온 숙성을 거치면 비로소 막걸리가 완성된다. 보자기에 담아 꾹꾹 눌러 짜면 받쳐 놓은 대야에 주르룩 떨어지는 소리와 발효된 막걸리의 냄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막걸리를 담겠다고 생각하는 그날부터 5주일에 걸치는 마지막 과정까지 하루하루를 들여다보고 정성을 쏟고 시간을 들인다. 그리고 그렇게 느리게 나온 단 7병의 막걸리는 너무나 소중해서 맥주 들이키듯 한번에 마시지도 못하고 녹차 잔에 딱 1컵씩만 마시게 된다. 

또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1병씩 선물을 한다. 



분명 내가 만든 맛있는 막걸리를 신나게 퍼마시려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막걸리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발효’와 같이 숙성과 느림 그리고 정성과 시간의 개념이 되었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명상과 같은 의식이 되었다. 제법 손에 익어서 집에서 막걸리를 담가 먹는 3년째 되는 해인 지금은 마음이 시끄럽거나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되면 으례 하는 나만의 행사가 되었다.(물론 신랑의 힘을 많이 빌리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살았다. 

너무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겁 없는 도전과 시작은 때로는 나를 지치게 했다. 나 자신을 불안하고 조바심 나게 했다.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요즘 가장 관심사인 글쓰기와 책 쓰기 때문에 나는 또 자기 계발 중이며 연습 중이다.


우리는 반드시 돈을 벌고, 비싼 집에 살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종의 내가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고 하루하루 발전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얻기 위한 머리와 마음의 풍요로움 때문일 것이다. 자기 계발이 가지고 있는 맹점인 ‘중독성’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평생을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한 이유는 충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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