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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Aug 17. 2020

쓰레기통에서 꺼낸 디자인

사만다는 카페에서 남자를 만난다. 멋진 외모와 매너에 비해 작은 키 때문에 사만다는 몇 번의 데이트를 하고, 친구 샬롯이 개최한 ‘중고 애인 파티’에 쓸모없어진 그를 데리고 간다.

‘나에겐 중고이거나 쓸모없어진 애인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다’
는 의미를 부여한 파티였다.

파티의 제목을 알게 된 키 작은 남자는 기분 나빴지만, 결국은 그 파티에서 다른 사랑을 찾았다.
미드 'Sex and the City' - 좌에서 두 번째가 사만다


2000년대 초반 핫했던 ‘Sex and the City’의

에피소드 302 편의 내용이었다.

그 에피소드를 보는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지금 클라이언트가 별로라고 말한 디자인도 다른 사람에겐 최고의 디자인이 될 수 있겠구나!’


그 후 데스크톱 바탕 화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디자인 쓰레기통’이라는 폴더를 만들었다.

실패하거나 진행하다가 멈춘 디자인, 클라이언트에게 까인 프로젝트나 디자인 소스들이 두서없이 모여져 있는 장소이다.


그때부터 ‘디자인 쓰레기통’은 나의 디자인 폴더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간혹 작업하다가 막히거나, 안 풀리거나,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을 때는 바로 그 ‘디자인 쓰레기통’을 뒤적거린다. 반드시 그 폴더 안에 있는 디자인을 적용한다기보다는 당시 했던 작업과 생각, 그리고 디자인 영감이 스쳐 지나가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로 떠오른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 폴더 안에서 나는 헤엄치듯 헤매고 다니다가 문득 디자인에 다시 몰입하곤 하였다.


어찌 디자인뿐이겠는가!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말했던 친구에게 ‘저런 친구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천생의 배필을 만나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면 세상의 모든 이치는 딱 들어맞는 적합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적합함은 상황, 때, 시간의 삼위일체가 될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에게 쓸모없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남에게는 하찮은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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