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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Sep 20. 2020

매뉴얼의 매뉴얼의 매뉴얼의 매뉴얼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디자인그룹에서 구축하는 모든 식음시설의 신축, 리뉴얼, 유지보수를 위한
설계 및 시공 부문을 다루고 있는 설계 지침서이다.


회사 다닐 때 435페이지짜리 ‘디자인 매뉴얼 북’을 만들었다. 10,000평짜리 식음 시설 오픈 후에는 기획, 운영, 영업, 마케팅, 디자인 팀이 몇 명씩 모여 3개월 동안 1,000페이지짜리 ‘식음시설 백서’를 만들었다. 회사 규정 외의 범위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그에 맞는 기준점을 만들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정했었다.

즉, 모든 생각과 행동지침에 표본을 정하는 것이었다.


매뉴얼을 만들어 놓아도 상황과 상태가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만큼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기준을 벗어날 때 적용하는 기준을 또 만든다.

즉, 매뉴얼을 따르기 위한 매뉴얼을 만든다. 


매뉴얼의 매뉴얼의 매뉴얼의 매뉴얼을 만들다 보면

최적의 기본을 지키기 위한 매뉴얼은 매뉴얼이 없는 것 이상으로 다양성을 지니게 된다.


얼마 전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를 읽으며 그들의 소통방법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회사들처럼 간단히 강조할 포인트를 멋진 차트와 함께 슬라이드로 정리하여 발표자가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장면은 아마존에서 보기 힘들다. 그 대신 사용되는 것이 6 페이저라고 부르는 A4용지 여섯 장 짜리 내레이션식 문서다. 이 6 페이저는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별다른 추가 설명 없이 끝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설명하듯이 써야 한다. (p196)

빠르면 몇 시간 안에 준비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와 달리 6페이지를 작성하는 데에는 보통 몇 주가 걸린다. (중략) 흘러가는 말과 달리 온전한 문장으로 쓰인 글에는 도저히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p197)

발표자가 주도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질문을 받는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회의가 아니라 전체가 다 함께 참여하여 본질, 곧 관련 안건이 회사와 고객에 미칠 긍정적 영향과 혁신에 대한 심도 있는 회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p199)


아마존이라는 공룡 그룹을 이끌기 위해서는 당연히 회사의 매뉴얼이나 지침서, 또는 백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6 페이저’라는 발표 방식을 도입한 의도는 분명 화려한 기술과 말솜씨로 회의를 주도하거나 발표를 멋들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청중과 고객의 입장에서 A to Z까지 조사하고 지식을 바탕으로 일목요연을 표본 삼아 참가자들과 의견 조율을 위해 아마존에서는 이러한 6 페이저를 도입하였을 것이다.


지난 9월 16일 고용부는 전문가, 학계 의견을 고려해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만들어 발표하였다.


집이 답답해 근처 카페에 가는 것은?

우는 아이를 달랜다고 근무 태만인가?

업무 다 하고 남은 근무 시간에 게임을 해도 되나?

재택근무자도 연장이나 야근 수당은 받을 수 있나?

재택근무 중 의자에서 일어나다 넘어져 다치면 업무상 재해인가?


등 수없이 많은 기업에서, 수없이 많은 근무자들이 같은 공간도 아닌 재택근무를 하니 얼마나 많은 다양성과 질문들이 있겠는가. 그래서 만든 것이 '재택근무 매뉴얼’ 일 것이다.

재택근무 매뉴얼을 만들면 근무자의 태도와 행동을 제약하여 근무 본연만 열심히 하게 되어 기업의 매출은 오를 수 있을까?

재택 근무자는 매뉴얼에 있는 대로만 하면 회사와 동일한 조건으로 일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뉴얼, 백서, 표본의 굴레에 갇혀서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둔함에 헤매지 말아야 한다.


참조 :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박정준 저,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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