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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Oct 07. 2020

가치 있게 살아왔는가?

나 자신을 차분히 돌이켜보니, 나는 25년 가까이 우직하게 일만 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련된 일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사람도 인테리어나 건축 관련자만 만나다 보니 주변에 자연스럽게 선후배, 친구들도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들이었다.  


여행도 건축, 디자인 기행이 주된 목적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세계적인 디자인 페어인 Maison & Objet Paris, Salone del Mobile, Milan, 100% Design London 등을 찾아다녔다. 디자인에 국한된 나의 한계점을 아트로 확장하기 위해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The Armory Show New York, Art Basel, Venice Biennale, Kassel Documenta, Münster Sculpture Project 등을 참석했다. 내 돈 내고 내가 다녔다. 


영화, 전시 역시 디자인, 건축, 예술로 치우쳐 있었고, 친구와 카페를 가도 커피 마시면 수다 떠는 것보다는 디자인을 둘러보고 그 자리에서 그 카페의 평면을 그리는 게 취미였다. 


포토샵 단추를 더욱 빠르게 누르기 위해 단축키를 연습했고, 도면을 더 멋지게 그리기 위해 캐드 스킬을 빠르게 익혔다.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멋지게 하고 싶어서 눈에 딱 들어오는 파워포인트 장표 만들기 연습을 했으며 레이아웃과 콘셉트를 잘 잡기 위해 관련 서적과 잡지, 논문들을 섭렵했었다. 앉아서 디자인만 하는 절름발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몇 년을 시공 현장기사부터 시작하여 현장소장까지 하면서 현장감을 익히며 디자인과 시공과의 갭 차이에 대한 연구도 하였다.


24살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받은 나의 첫 월급은 실 수령액 675,000원이었다. 그 돈이 많은지 적은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돈이 고스란히 남도록 나는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생활을 했었다. 


일을 하다가 부족함이 느껴져서 건축 대학원을 갔다. 학교를 졸업하면 또 일을 했다. 또 십몇 년 일하다가 더 깊이 배우고 싶어 디자인 대학원을 갔다. 졸업하고는 또 디자인 일을 했다. 남자 친구도 재미없었고, 결혼도 관심 없이 오직 인테리어 디자인 일만 하고 살았다. 


클라이언트가 내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우쭐했었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으면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머리가 커가면서 내가 일한 만큼 연봉 올리는 스킬도 늘어났고, 연봉의 앞자리가 나의 실력을 말해준다고 확신했었다. 사람들에게 ‘와우!’ 디자인을 안겨주기 위해 디자인 가치와 내면을 중시한 게 아니라 화려함과 고도의 기술을 갈고닦았다. 


불과 얼마 전, 어느 날부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가치 있게 살아왔는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여전히 매일 꾸준히 일하고 있지만, 나 자신을 완성해 가는 가장 뚜렷한 수련의 도구로서의 일을 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명상을 마음이 고요해지기 위해 한다면, 수행자는 편안한 상태가 되면 더 이상 명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지혜를 얻기 위해 명상을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수행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흐름을 같이 한다.


내가 만일 돈을 벌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디자인 일을 한다면 내가 원하는 돈을 다 벌고 나면 또는 남이 기쁘지 않는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수련하여 더 높은 곳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일을 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할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읽으며 ‘일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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